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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인보 4,5권 발견] ④ 선진 문물에 대한 갈망

중앙일보

입력

기술자의 양성을 주장한 박형무씨의 글. 기술자가 너무 부족한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2차대전 당시 남양군도 등에서 미군의 포로가 됐던 한인 징용자들이 하와이 수용소에서 만든 주간지 '자유한인보' 4,5호 진본이 발견됐다. 자유한인보는 2700여 한인 포로들의 유일한 소식지로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이후 주간지 형태로 모두 7호까지 발간됐다. 하지만 그동안 원본은 7호만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에 확보된 상태였고 2013년 말 3호 사본이 발견된 바 있으나 나머지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발견된 자유한인보는 '독도 화가'로 잘 알려진 권용섭(56·LA)씨가 부친이 남긴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확보했다. 징용자들의 구구절절한 심정이 담겨있는 자유한인보 주요 내용을 5회에 걸쳐 정리한다.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포로가 되어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일제징용 한인 포로들. 2700명이 미군 하와이 수용소에서 갇혀 있다가 마침내 그리운 고국으로 귀국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 여과없이 담겨 있는 '자유한인보'. 당연히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마음이 넘쳐났지만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조국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넘친다. 하와이에서 발전된 미국 문명을 간접 체험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본보에 의해 자유한인보 1~7호 중 4, 5호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는데 4호 '세계뉴스' 코너에서는 '우리나라 소식'도 전한다.(뜻이 통하는 표기는 그대로 인용)

'서울의 위생에 대하야'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글이다.

"…서울은 서양화한 도시이며 인구도 백만에 가까웁다. 그러나 서울에 수세식 변소가 없는 것은 건강상 큰 위험이며 완전한 수도가 설시(設施)되지 못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위생에 관해서는 한인은 마음 섭섭할만큼 연구나 경험이 없다…."

서울에서 통계 사무를 보던 앤드루 왕이라는 한인 미군대위의 보고서를 번역한 것이다. 한인 포로들은 하와이 해변 청소 등을 하면서 미국의 문명을 접했다. 그들의 눈에는 아직 수세식 변소가 없는 서울의 모습이 낯뜨거웠을 것이다.

5호와 6호를 통해 '콜롬비아의 도시개선'이라는 논단도 나온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온 실비아 마틴이라는 사람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우리의 생활 미화에도 도움이 되려니와 우리나라의 위생문제 해결에도 큰 관계가 잇을 것이다'는 취지를 달았다.

"콜롬비아국은 산이 많아서 국민은 깊은 계곡에 갇혀 살고 각 부락은 높은 준령으로써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나라에 어떠케해서…20세기의 문화를 다른 나라에 지지않게 보존하게 되엿는가. 이 문화 향상의 비결은 공공향상회(The Soceity for Public Betterment)가 잇는 것이다…전국의 지부를 통해서 19세기부터 열렬한 개혁이 잇었다…이 회원은 국가 장래를 위하여 국민을 지도할 만한 공공정신을 갖인 사람들이다. (공공) 사업을 위하여 사유재산을 투자하기도 막대했으나 아무도 사리(私利)를 거둔 사람은 없었다…" 이 글을 소개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겠다.

박형무 필자는 '자유독립의 기초-기술자의 양성'이란 글에서 우리나라의 낙후된 기술을 한탄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역설한다.

"…실상 넓지도 않은 조선내지의 철도 하나를 우리 손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대한사람의 대한이라고 부르짓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고…자연과학의 이론적인 기초연구에 관해서는 여기에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가 '아사히'가 조타(좋다), '키링'이 조타, '삽뽀루'가 조타 하며 마실뿐이엿지 맥주 한병 똑똑히 제조한 사람이 조선 사람 중에서 누구엿뜬가…"

박형무는 이같은 과학기술의 낙후는 일제가 교묘하게 이런 교육을 시키지 않은 탓도 크다고 했다.글은 이렇게 맺는다.

"…귀국일이 목전에 닥친 우리들은 마치 자유독립의 나라에 향락을 찾아가는 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잇으나 자유독립의 기초는 즉 기계를 부리고 고치고 물건을 제조하고 하는 우리 자신의 피와 땀의 실력에 잇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리종실 필자는 '교육과 환경'이란 글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의 '해랭케라(Helen Keller)'여사는 맹인과 농아를 겸한 사람이었으나 그 일홈(이름)이 세상에 들내게 된 원인은 교육의 힘이라 할 것이다…패스터롯치(페스탈로치)씨는 서서국(스위스)인으로 자기 일생을 아해(아동)들 교육에 헌신한 사람으로…" 이같은 교육의 주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다. "…서당이나 가정에 잇어 아해들의 의사를 전연 무시하며 부형 또는 선생의 의사만 맹목적으로 주장하며 강요하여 왔다…그러니까 의사불상통으로 아해들에게 모욕을 주는 경우가 많다…" 70년 전의 주장으로 보기에 놀라울 정도로 진취적이며 지성적이다. 지금 내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원영 LA중앙일보 기자 sk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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