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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볼 '외인 괴물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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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공이 너무 빨라요." "배트가 밀려요."

국내 소프트볼계에 '괴물 투수'가 등장했다. 18일 장충리틀구장에서 벌어진 제15회 회장기 전국여자대학 소프트볼 대회 준결승전에 출전한 호서대 1학년 왕쭝옌(王宗姸.21.1m78㎝)은 시속 1백5㎞짜리 강속구를 던져댔다.

상대인 단국대 선수들은 "공을 맞혀도 자꾸만 빗나간다"고 말했다. 호서대 장남제 감독은 "소프트볼은 시속 1백㎞만 넘어도 타석에서 느끼는 체감 속도는 1백30~1백40㎞에 달한다"고 한다.

상대 선수들이 깜짝 놀란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왕선수는 중국인이다. 중국 소프트볼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며 미국.일본과 함께 세계 정상을 다투는 소프트볼 강국으로 이끈 주역이다.

왕선수는 올해도 중국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그러나 거절했다. 한국 유학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호서대 소프트볼팀 박정근 지도교수는 "2년 전 한.중전에서 왕선수의 빠른 공을 보고 유학을 권했다"고 밝혔다.

왕선수는 "월드컵 때 보여준 한국 축구팀의 패기를 잊을 수 없다"며 "보다 넓은 세상에서 안목을 키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왕선수는 원래 배구선수로 출발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1m70㎝인 키가 작다(?)는 이유로 배구를 접어야 했다. 대신 소프트볼을 택했다. 왕선수는 열다섯 살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소프트볼이 하고 싶어서였다.

베이징.톈진.상하이와 함께 중국 소프트볼 4강팀인 인민해방군에서 왕선수는 7년간 에이스로 뛰었다. 한국 유학을 결심한 왕선수는 지난해 인민해방군에서 제대한 후 불과 엿새 전 한국땅을 밟았다.

이날 3회초에 마운드에 오른 왕선수는 제구력이 흔들려 볼넷 두 개를 내준데다 수비 실책으로 3실점했으나 4회에는 강속구를 앞세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4회말까지 6-6으로 팽팽했던 이날 경기는 장대비로 인해 연기됐다.

왕선수는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맨땅에서 슬라이딩도 서슴지 않는 투지가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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