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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도 감독, 설악고 야구부와 암 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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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도 감독. [사진=김경빈 기자]

"아이들과 함께 야구하다보니 암은 완전히 나았어요. 허허"

'만루홈런의 사나이' 이종도(62) 감독이 인생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무대는 강원도 속초에 있는 설악고 야구부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해결사로 유명했다. 1969년 제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국내 고교야구 사상 최초로 만루홈런을 날렸고다. 프로야구 원년(1982년) 개막전에서 MBC 유니폼을 입고 삼성전에서 7-7 동점인 연장 10회 말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영웅이 됐다. 1987년 은퇴할 때까지 6년 간 프로생활 동안 타율 0.268, 28홈런, 176타점을 기록했다. 이후 태평양·LG·쌍방울에서 코치를 한 뒤 2000년에서 2006년까지 모교인 고려대 감독을 맡았다. 타고난 입담으로 야구해설가로도 활동하다 다시 프로야구 지도자 복귀를 타진했다.

그러나 2010년 담도암을 진단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을 무사히 마쳤지만 치료 과정이 고통스러워 다시 야구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요양차 강원도에 머물렀던 이 감독은 "'이렇게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 때 설악중에서 야구부 아이들 지도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소일거리 한다는 생각으로 설악중에 갔는데 열악한 환경에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이 감독은 아예 감독을 맡았고 아이들이 자라 설악고에 진학한 후, 설악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 감독은 "아이들과 2년 정도 학교 숙소에서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하면서 내 몸도 저절로 나았다"며 웃었다.

이 감독의 지도를 받아 설악고 야구부도 점점 발전했다. 설악고는 19일 춘천 의암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16강전에서 마산 용마고에 져 8강 진출을 좌절됐지만 '강원도의 힘'을 보여줬다. 외야수 김영한(18)은 프로야구 삼성 1차 지명을 받았고, 왼손 투수 최성영(17)은 청소년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기량이 향상됐다. 이 감독은 "처음 아이들을 맡았을 때 기술적으로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했고, 실력이 나아지고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이 감독이 특히 강조한 건 훈련이 아닌 독서였다. 단기 합숙훈련 때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오라고 한 후, 다 읽고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라고 한다. 이 감독은 "야구계에서 우여곡절을 겪어보니 정말 중요한 건 '스스로의 인생을 사는 것'이더라"며 "고교야구 선수 모두 프로에서 유명 선수가 될 수는 없다. 또 프로야구에 간다고 해도 시련의 연속이다. 야구 이외에 또 다른 인생도 있으니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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