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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눈맞춤" 교황이 보는 건 사람의 마음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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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바둑돌을 다시 놓는다. ‘프란치스코 4박5일’을 곱씹으며 돌 하나씩 복기(復棋)해 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작 우리에게 남겨놓고 간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작았다. 차도 작고, 숙소도 작고, 방명록에 남긴 글씨까지 작았다. 그럼에도 그는 컸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낮추는 겸손이 컸고, 아픈 사람을 끌어안는 가슴이 컸고,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크고 깊었다.

 16일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 ‘교황의 눈’을 직접 봤다. 신자들은 1m쯤 되는 차단벽 뒤에 서 있었다. 교황은 일일이 손을 잡으며 그들의 눈을 찾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음성 꽃동네에서도 그랬다. 장애인을 만날 때도, 위안부 할머니를 만날 때도, 세월호 유가족을 만날 때도 교황은 ‘눈’을 쳐다봤다. 이 세상에 오직 그 사람만 존재한다는 듯이.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그랬다. 사람들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느낌이다”며 좋아했다.

 사실 그건 눈이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그가 뚫어지게 바라본 건 상대방의 마음이었다. 교황은 그걸 ‘공감’이라고 표현했다. 17일 해미 순교성지 소성당에서 아시아 주교들과 만났을 때 교황은 ‘진정한 대화’에 대해 언급했다.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들어가라고 요구했다. “상대방이 하는 말만 들어선 곤란하다.” 말의 뒷면까지 보라고 했다. “말로 하지는 않지만 전해오는 그들의 경험·희망·소망·고난과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둔 걱정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건 곳곳에서 동맥경화 증세를 보이는 대한민국을 향한 교황의 통찰이자 소통의 노하우였다.

 우리 사회는 둘로 쪼개져 있었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대립과 반목의 창을 통해서 종종 상대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는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교황은 ‘다리 놓는 법’을 일러주고, 직접 보여줬다. 방법은 간단했다. 상대에게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는 일이었다. 교황은 그렇게 생겨난 공감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혹자는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에 실제로 던져준 해결책은 없지 않으냐고. 어쩌면 교황은 그보다 더 큰 걸 우리에게 선물했다. 위안부의 아픔, 세월호의 상처, 분단의 고통이 가득 실린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줬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소통. 교황이 남긴 메시지가 캄캄한 밤, 길을 잡는 북극성처럼 반짝인다. 이제는 우리가 노를 저을 차례다. 그 별을 따라서.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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