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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잠들려 하면 깰 것이오, 깨려 하면 잠들 것이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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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금방 잠들고, 코까지 고는데 불면증?

(스트레스 클리닉을 찾은 48세 전업주부) 잠을 잘 못자 너무 힘듭니다. 누우면 금세 잠이 들기는 합니다. 그런데 몇시에 자든 새벽 1~2면 꼭 깨요. 이때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합니다. 어떨 때는 아예 꼴딱 밤을 새울 때도 있고요.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도 늘 머리가 무겁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이해 못해주는 남편 때문에 더 화가 나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고 하면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어젯밤에도 금방 잠 들고는 코까지 골던데’라며 꾀병 환자 취급합니다. 어쩔 땐 팔자 좋다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큰 부부싸움으로 번진 적도 있습니다. 제 불면증을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잠이 더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로의 아이콘, 닥터 윤) 우선 이것부터 말씀드리죠. 불면증, 맞습니다. 좋은 수면은 빨리 잠드는 것뿐 아니라 중간에 깨지 않고 깊이 자고, 일어나면 개운한 걸 말합니다. 수면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잠드는 건 수면의 진입, 깨지 않고 잘 자는 건 수면의 유지입니다. 환자분은 수면의 진입은 어느 정도 되는데 수면 유지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잠은 자는 시간만큼 깊이도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 골며 자는 걸 깊게 자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면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수면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요. 지하 4층입니다. 지하 3~4층까지 쭉 내려가야 깊은 잠입니다. 수면을 통해 뇌가 충분히 회복됐기에 아침에 개운하죠. 하지만 하루에 10시간씩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경우가 있죠. 지하 1~2층의 얕은 잠을 잤기 때문이죠. 뇌 스위치가 꺼지지 않고 언제든 일어날 준비를 한채 스탠바이 상태로 있는 겁니다. 밤새 야간 경계 근무를 했다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그나저나 언제부터 이렇게 잠을 제대로 못 잤나요.

Q스트레스 받는 건 아들인데, 왜 내가 못 자나?

지난해 초부터입니다. 지금은 대학에 들어간 고3 아들이 그날 공부를 마치고 잘 때까지 옆에서 책을 읽든지 아니면 TV라도 보며 저도 같이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드니 금세 푹 잘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중간에 자꾸 깨더군요. 그땐 스트레스 때문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죠. 그러면서도 좀 이상하긴 했어요.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도 입시에 매달리는 아들보다 더할 리는 없을 텐데, 왜 나만 잠을 못 자나 싶어서요.

스트레스의 전염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남도 아닌 가족의 스트레스라면 더 하겠죠. 믿기 어렵다고요. 그렇다면 스트레스도 감기처럼 전염된다는 연구 결과를 한번 소개해보죠.

 먼저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염된다는 미 뉴욕대 연구(2014)입니다. 엄마 69명과 그들의 12~14개월 자녀를 대상으로 한 연구입니다. 엄마를 자녀로부터 떼놓은 후 일부 엄마에게는 스트레스 상황을 유발한 후 다시 아이 곁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아이 심장 박동과 행동을 체크했더니, 스트레스 받은 엄마의 자녀는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지고 타인을 피하는 경향까지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엄마의 스트레스를 본능적으로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말로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편히 먹으라’고 해도 정작 엄마·아빠 마음이 편치 않으면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 사이에도 스트레스가 전염된다는 미 세인트루이스 대학 연구(2014)도 있습니다. 이번엔 참가자 151명에게 관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수학 문제를 암산으로 풀게 했습니다. 그리고 200여 명의 관중들 타액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농도를 측정해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관중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가 26%나 증가했습니다. 또 관중의 스트레스 정도는 연설자 스트레스 수치에 비례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전염돼 마치 내가 연설을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은 거죠.

 직접흡연 이상으로 간접흡연이 해로운 것처럼 이렇듯 간접 스트레스도 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스트레스는 목소리 톤이나 표정·자세, 심지어 냄새를 통해서도 전파됩니다.

Q불면증 요인 사라졌는데 계속 잠 못드는 이유?

그렇군요.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또 있습니다. 아이는 이제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옆에서 졸음 참으며 같이 버틸 일도, 그렇다고 대학 못 보낼까 고민할 일도 없는데 아직도 잠을 잘 못 잡니다. 주변에서는 ‘대체 뭐가 걱정이냐’며 저보고 너무 예민하다고들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좀 억울합니다. 전 별로 예민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주변 사람은 물론 남편도 절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공감해주지 않으니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자존감마저 떨어집니다.

애초에 수면을 방해하던 고민거리가 사라져도 계속 불면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아들은 멀쩡히 대학 잘 들어갔는데 왜 불면증이 지속되는지 궁금하다고요. 바로 만성 불면증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어떤 문제 탓에 잠을 잘 못 잡니다. 고3 아들의 입시 같은 분명한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보면 그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져도 불면 자체가 스트레스 요인이 돼 계속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불면이 불면을 만든 거죠. ‘아들이 대학에 잘 갈까’라는 스트레스 요인이 맨 처음 불면을 야기했지만 이젠 ‘오늘도 새벽에 깨서 밤을 꼴딱 새면 어떡하지’라는 불면 걱정이 내 수면을 방해하는 겁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걱정거리 없는 불면을 만듭니다.

Q운동 하고 커피 안 마시는데 왜 계속 잠이 안오지?

그렇다면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노력하는데도 효과가 없는 건 왜일까요. 오후가 되면 어떻게 하면 잠이 잘 올까 싶어 이런저런 고민을 합니다. 의식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않기도 하고 운동을 좀 심하게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몸이 지치도록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거죠. 거꾸로 몸은 엄청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럴 때는 더 괴롭습니다. 밤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럴 때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마음 편히 먹으라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마음 편하게 못 먹는 이상한 성격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성격이 괴팍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효과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마음을 편히 먹으려고 노력하면 잠은 더 오지 않습니다.

불면증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만사는 열심히 해야 해결되는데 수면 문제는 열심히 노력할수록 더 잠이 오지 않으니까요. 불면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오죽하면 잠 안 재우는 게 고문의 한 방법이겠습니까. 인위적으로 잠을 안 재우는 걸 수면박탈이라고 하는데, 멀쩡한 사람도 며칠을 수면박탈시키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불면증은 일종의 자기 고문인 셈입니다. 어떡하든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데 이 노력이 불면의 늪으로 더 빠지게 만듭니다.

Q노력해도 안 된다고요.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요.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노력 안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만성 불면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의 핵심은 ‘오늘 못 자면 어떡하지’라는 불면에 대한 불안을 줄게 하는 겁니다. 잠에 대한 염려가 오히려 내 잠을 망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니까요. 불안 반응은 뇌를 각성시킵니다. 생체 시계가 밤을 인식하고 잠들려고 해도 잠 드는 걸 어렵게 하거나 잠 들어도 깊은 잠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불안에 의한 뇌의 각성 상태를 바꿔야 개선이 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 할수록 오히려 불안-스트레스 반응이 커지니까요. 잘 자겠다고 저녁 7시부터 이부자리에 눕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눕는다고 잠이 오지는 않죠. 잠자리에서는 그렇게 안 오던 잠이 회의나 강의 시간에는 쏟아집니다. 자면 안 되는 상황이라 오히려 수면에 대한 불안감이 줄면서 뇌가 이완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걸 이용하는 겁니다. 꼭 자야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대신 ‘난 오늘 새벽 1시까지 절대 안 잘거야, 그 시간을 즐길 거야’라고 역설적으로 접근하세요.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면 잠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돼 불안감이 더 증가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20분 이상 누워있지 마세요. 바로 일어나 마루에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다 잠이 오는 것 같으면 그 때 잠자리에 드는 게 효과적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데 뒤척이며 누워있으면 잠자리가 수면과의 전쟁터가 돼버립니다. 이미 잠자리가 전쟁터가 됐다면 잠자리를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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