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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풀렸어도 제대로 안돈다|한은 발표 작년 총통화 26.7%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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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연말께부터 돈이 집중적으로 풀리고 있다. 더이상 불황이 심화되는 것은 위태롭다고 판단하고 경기회복을 위해 본격적으로 돈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9일 한국은행이발표한 지난해 총통화증가율은 29.7%를 기록했다. 당초 목표했던 25%억제 선을 넘어서긴 했으나 그 동안의 사회불안과 물가오른것등을 감안할때 그 정도면 비교적 무리없이 통화정책이 운용되어온 셈이다. 그러나 그내용을 들여다 보면 상반기에는 잔뜩 죄었다가 추석이후부터 물꼬가 터진 봇물처럼 돈이 한꺼번에 풀려나왔다는점이 문제다.
특히 12월중에는 해외부문을 통해 돈이 들어오고 나오는 것을 제외한 국내여신 기준으로볼때 1조1천3백47억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이 풀렸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4천2백억원에 비하면 평소 3개월에 나갈돈이 한달안에 풀려나간셈이었다.
또 통화팽창의 가장근본이 되는 화폐발행고를 기준으로 보면 1년동안 모두 2천2백10억원이 발행됐는데 이중 84%에 해당하는 1천8백47억원이 12월 한달동안에 찍혀서 한국은행금고를 빠져나왔다.
이렇게 12월중에 돈이많이 풀린것은 정부가 추곡을 수매하는 것을 비롯해 4천억원이상을썼고 주로기업들 차지인 민간신용이7천억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중에는 부도위기에빠져 있는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한 건전기업지원자금 1천72억원과 수요자금융 5백13억원등 윈래 계획에있던 씀씀이 이외에 경기회복을 위해 따로 처방된 긴급 윤혈자금까지 끼어 있어 돈이 더욱 많이 풀리게된 것이다.
이렇게 죄었던 돈을 급하다고 한꺼번에 풀어버리면「인플레」를 자극할 위험성이 매우높다. 같은 양의 돈이라도 일정하게 서서히 풀어야 「인플레」 를 덜 자극한다는 게 화폐이론가들의 지적인데 우리의경우는 경기회복에 다급한나머지 그반대헌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연말에 돈이많이풀리면 이듬해 연초에는돈줄을 다시죄어 균형을 맞추는 것이 보통인데 올해는 경기회븍을 이유로 연초부터 계속 돈이 풀려나갈전망이고 보면 돈이흔해 「인플레」가 과열되는일이 또다시재연될우려가큰것이다.
한편 이렇게 돈이 풀리는데는 시중에 돈이 없다는 불평은 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돈이 아무리풀려도 돈이 제대로 돌지않기 때문이다.
가령 은행이 기업에 대출을 해주면 기업이 그 돈을 공장도 짓고 직원들의 봉급을 지불하는데 써야 그것들이 다시 구매력이 되어 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인데 그렇지못한것이 문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우선 당장 발등의 불인 사채얻어쓴 것을 갚아야 했고 전주는 빌려준 돈 떼일까봐 거둬들이는데 급급한 형편이었다.
결국 전주들의 뭉치돈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은행예금을 했고 일부 기업가들 마저 투자「마인드」가 위축되어 사업을 포기하고 은행이자나 바라고 앉아있는 현상까지 빚었다.
저축성예금이 지난한햇동안 2조원이상 늘어나 31%의 높은 증가율을 보인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들의 저축심이 앙양되어서가아니라 공장을 돌리는데 쓰여져야 할 자금들이 대거 은행금고를 피신처로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며칠사이에는 경기회복에 대한 성급한 기대속에 그 동안 숨어있던 유휴자금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정작 가야할 생산자금쪽으로 가지않고 해속후의 부동산투기를겨냥해 한겨울인데도「아파트」를 올려놓은 기현상까지 빚고있는 것이다. 또최근 폭등세를 보이는 주식 값도 돈이 갑자기 는데큰원인이 있다.
총통화증가율이 26.7%였는데 비해 총통화에서 저축성예금을 뺀 통화의 증가율은 16%선에 머물렀다는 것도 이 같은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총통화증가율은 26.7%이면서 국내여신의 증가율은 41.6%를 기록했다는 점도 일종의 기형적인 통화운영 방식이다.
다시말해 국제수지의 악화로 한햇동안 순외화자산이 18억「달러」나 감소한 결과 8천5백억원을 해외부문에서 거둬들인 덕분에 그 돈을 국내여신에 돌려쓴 것이다. 만약수출이 잘되어서 국제수지가 호전되었더라면 통화정책이 과연 어찌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참「아이러니컬」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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