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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만난 교황 "희생자 아픔 마음속 깊이 간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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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접 나온 세월호 유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교황은 평신도 환영단 일원으로 나온 유가족에게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박종근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소외 받고 상처 받은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평소 낮은 곳을 향해 항상 몸을 낮췄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그대로였다.

 14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성남의 서울공항에 도착한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 탈북자 등 가톨릭 평신도 대표 32명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세월호 유가족 대표로는 고(故) 남윤철(35) 안산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62)씨와 부인 송경옥(61)씨, 고 박성호(단원고2·17)군의 아버지 박윤오(50)씨, 고 정원재(61)씨의 부인 김봉희(58)씨 등 천주교 신자 4명이 이름을 올렸다. 교황의 손을 잡은 유가족들이 울먹이자 교황은 왼손을 가슴에 올린 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평화로운 아이’로 불렸던 박성호군은 예비신학생 과정에 들어간 독실한 신자였다. 박윤오씨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교황을 뵙게 될지 몰랐다”며 “기적이 일어나갈 바란다”고 말했다.

 장애인 대표로 교황을 만난 정진숙(62)씨는 소아마비를 앓았던 바느질 장인이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입었던 제의(祭衣·사제는 제의를 수의로 사용)를 만들었다. 18일 교황이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주례할 때 입을 장백의(長白衣·사제가 미사 때 제의 안에 입는 길고 흰 옷)도 제작했다. 현재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산하 봉제협동조합 솔샘센터에서 일한다. 탈북자 2명은 2001년 한국에 입국한 한성룡(44)씨, 2002년 입국한 김정현(58·가명)씨다. 김씨는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필리핀 출신 하이메 세라노와 볼리비아 출신 아녜스 팔로메케 로마네트 등 이주노동자 2명도 환영단에 포함됐다.

 범죄가족피해자 모임인 ‘해밀’ 소속 가족 2명도 교황의 손을 잡고 위로를 받았다. 2005년 범죄로 딸을 잃은 배덕환(75)·김기은(67)씨 부부다. 부부는 “죽은 영령들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살펴 온 외국인 선교사인 양 수산나(78) 여사·안광훈(73·브레넌 로버트 존) 신부도 있었다. 양 수산나 여사는 1959년 한 달 넘게 항해한 끝에 한국으로 온 뒤 50년 이상 불우한 여성들을 돌봐왔다. 안광훈 신부도 66년 입국한 후 빈민들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복자(福者)에 오르는 124위의 후손 2명도 교황을 먼저 만났다. 정약종(1760~1801)의 방계 4대손인 정규혁(88)씨와 권상문(1769~1802)·권천례(1784~1819) 남매의 6대손인 권혁훈(68)씨다. 정씨는 “교황님을 뵙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우리 집안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평신도 대표들은 교황방한준비위원회가 각계각층의 다양한 한국인을 만나고 싶다는 교황의 뜻에 따라 추천을 통해 선정했다. 준비위 허영엽 대변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탈한 데다 모든 사람과 소통하기를 원해 우리 사회에서 오래 봉사하고 교회 안에서 귀감이 되는 분들로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글=안효성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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