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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의 4각「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국의 유일한 세계권투선수권보유자였던 김태식이 어제「타이틀」을 잃었다. 2대1의 판정패에 혹 이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꼭 이겼다고 명백하게 말할 수도 없는 격렬한 싸움이었다.
가장 기대를 걸던「펀치」력도 도전자를 「다운」시킬 정도는 안되었다. 잔기술에 있어서도 상대보다는 뒤져 있었다.
역시 세계는 넓은 것이다. 그리고 실력이 말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챔피언」의 처지로서 가장 아까운 판정패라고 할 수 있다.
남의 나라 라지만 경기장은 꼭 국내체육관과 같았다. 관객의 대부분은 한국교포들이었다. 놀랍게도 그 중에는 여성이 많았다.
『권투는 사나이의 사나이다운 경기…』라고「셸버그」도『대중의 영웅「알리」』에서 노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권투에 흥분하는 것은 남성만이 아니다. 18세기에 영국에서 권투가 한참 유행할 때 자기 남편을 응원하다 흥분한 아내들이「링」위에 올라가서 남편들을 제쳐놓고 자기네들끼리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어제 「로스앤젤레스」의「올림픽」회관에 몰려온 한국의 여성들은 모두 권투를 처음 봤을 것이다.
그녀들은 아마 장 충 체육관에서라면 아무리 대단한 세계「타이틀」전이라 해도 절대로 구경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들은 그저 모국의 선수가 싸우러 왔다는 것만이 그지없이 기쁘고 대견스러웠을 것이다.
따라서 이겨 준다면 더욱 기뻤겠지만 그녀들에게는 승패가 그다지 문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은 그저 마음놓고 한국말로 함성을 올려 보는 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가장 순수한 조국애라고 볼만도 하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관중들이 깡통이며 종이뭉치를「링」위에 던지자 그 중의 한사람이「마이크」를 잡고 『한국인의 긍지를 보이자』고 호소했다.
그러자 무질서해지려던 관중석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흐뭇해지는 한 토막의 막간극이었다.
아무리 영주권이다, 시민권이다 를 가지고 있다 해도 한국인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다. 한국인이기에 받는 기쁨보다는 서러움이 아무래도 많은 것이다. 아무리 정붙여 살겠다지만 역시 잊어지지 않는 게 내 나라 내 겨레일 것이다.
그것은 절로 우러나오는 애틋한 정념이다. 그것을 굳이 애국심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아무리 「로스앤젤레스」며「뉴욕」에서의 「코리안·타운」이 크다 해도 역시 남의 나라 안에서의 얘기다.
떳떳한 한국인. 자랑스러운 한국이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은 어쩌면 한국 안의 우리 보다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누가 강제한다고 애국심이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애국에는 또 어떤 이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 교훈을 어제 권투경기를 보며 느낀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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