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페르시아」만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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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군 30개 사단이「폴란드」영내로 진입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를 놓고 세계의 이목이 그리로 쏠려 있는 사이「브레즈네프」는 난데없이 「뉴델리」로 날아가 「페르시아」만 평화 안이란 것을 내놓았다.
한쪽에서는 군대와 중화기를 풀어 자기들의 세력 망을 굳게 지키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남의 세력 망을 교묘한 정치공세로 무장 해제하려는 「크렘린」세계전략이 다시 한번 가동한 셈이다.
「브레즈네프」의 인도방문은 중공과 미국의 제휴에 대한 하나의 가동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방문은 특히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에 대한 「크렘린」의 장기적인 야심을 공 표한 일종의 선언적 의미를 함축한다 하겠다.
중동과 「페르시아」만·인도양에 관한 한, 「크렘린」은 아직까지도「변두리」에만 와 있지 그 중심에는 와 있지 못하다. 「아프가니스탄」과 남「예멘」, 「이디오피아」, 「소코트라」주에는 물론「크렘린」의 일부 해·공군력이 진주하고 있지만 소련은 그래도 중동의「파워」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미완의 강함에서 소련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선 이 지역의 좌경적 비동맹 화와 비무장화롤 촉진하는 일일 것이다.
이 지역이 일단 비무장화하여 미국의 힘이 빠져나가기만 하면 역내각국에서의 반미적인 혁명과 「팔레스타인」유의 좌익혁명을 유도할 「찬스」가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브레즈네프」가 제안했다는 「평화 안」가운데는 그린 저의가 담긴 항목들이 허다히 발견된다. 만 안 지역에 대한 불간섭 조항과 천연자원에 대한 주권존중 운운한 것은 결국 제2, 제3의 「모사데크」와 「호메이니」「가다피」혁명을 지칭한 것이며, 군사기지설치 금지조항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이스라엘」의 군사협력을 막아 보자는 저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지역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라고 한 것은 바로 소련 자체의 자의적인 영향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며 이 조약을 다변화하자고 한 것도 중동에 관한 소련의 발언권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자는 속셈인 것이다.
소련의 저의가 이렇듯 명백하다면 미국이나 서구·일본 등 서방측과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가 이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인도, 「시리아」, 「리비아」, 「알제리」,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그리고 어쩌면「이란」까지도 미국군사력의 배제와 간섭금지라는 대목 자체에는 일말의 공감을 느낄 소지가 없지는 않다.
특히 인도양의 미·소 군사대결을 우려해 온 해안의 일부 국가들은 적어도 인도양의 비무장화라는 구상만은 그것이 소련 안이기 이전에 자기들이 기왕에 내놓았던 안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 수년 내에 있었던 비 동명회의에서도 각국은 인도양을 비무장화하고 비핵지대 화하자는 결의안을 여러 차례 통과시킨 적이 있다. 미국의 중동수호결의를 천명한 「카터·독트린」이 일종의 군사적 대책이었다면 「브레즈네프」의 이번 선언은 이를테면 정치적 계략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숱한 제3세계 대책에서 번번이 좌절을 겪어야 했던 원인이 결국은 정치적 대책의 불완전성에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면, 「레이건」차기 행정부의 「페르시아」만 정책은 『정치의 영역에서 어떻게 이기느냐」를 좀더 심각하게 연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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