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생활 50년…자신의 문학 총 정리|전집 낸 황순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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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나라의 대표적 작가로 순수한 문학정신을 일관해 지켜오고 있는 작가 황순원씨(65)가 자신의 문학을 총 정리한 『황순원 전집』을 펴냈다. 「문학과 지성」사간의 이 전집은 모두 12권으로 그 가운데 우선 전집 1권에 해당하는 『늪/기러기』(단편집)와 9권의 『움직이는 성』(장편)이 간행됐다.
『이 전집간행이 이제 내 생에의 마지막 작업 같아요. 언제 다시 이런 전집을 꾸릴 수 있겠어요.』 황씨의 말이다.
이번 전집은 그의 창작생활 50주년을 기념하면서 57년이래 재직해온 경희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데 대한 경의의 뜻을 담고있어 더욱 의의가 있다.
『생애 마지막 작업』이란 황씨 자신의 표현처럼 출판사에서도 그 뜻을 살려 책을 꾸미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
이번 전집의 특징은 그동안 발표된 모든 작품을 황씨 자신이 다시 수정·보필했고 미완의 장편『신들의 주사위』를 완성해 추가했으며, 각 권에 비평가들의 해설을 곁들여 기존의 비평각도와는 다른 참신한 시각으로 재조명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12권은 황씨의 작가·작품론을 수록한 『황순원 연구』로 편집, 황순원 문학에 대한 결정적 연구서로 마련한 것 등이다.
황씨는 작품(소설) 이외의 글(수필·단상·「칼럼」등의 이른바 잡문)은 일체 쓰지 않는다. 잡문뿐 아니라 소설집의 서문이나 발문 같은 것도 일체 배제해 버린다 (쓸게 있으면 소설로 다 쓴다). 『작품이 모든 걸 다 말합니다. 말로 할 수가 있고 말로 다한다면 무엇 때문에 작품을 쓰겠어요.』
그러고 보면 그에게 있어 작품완성은 곧 인간 완성이란 뜻도 된다. 이런 엄격함 때문일까, 이번 전집에선 초교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직접교정을 보았다. 이것도 그는 창작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품이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때는 작가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흔히 황씨의 작품에 대해 현실을 외면하고도 피하고 있다고 말하는 때가 있다. 이에 대해 오씨는 문제성을 작품의 대상에서 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작품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무엇을 대상으로 삼았느냐가 문제될 수 없어요. 이상의 「날개」, 「조이스」의 「율리시즈」등은 작품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문제작이지요.』 결국 작가는 어떤 대상에 끌려 작품을 써서도 안되며 대상을 끌어와서 자기 것을 만들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 외의 길을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문학을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작품을 써왔기 때문에 『만약 다시 생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문학을 할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1915년 평남에서 태어난 황씨는 16세 되던 30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 36년에 시집『골동품』을 발간했고 그 뒤 소설로 전향했다. 지난해 9월 대학에서 정년퇴임 했으나 아직도 명예교수로 교단에 선다. 장남인 동규씨(시인·서울대 교수) 등 3남1녀는 모두 분가했고 보름 전 여의도 미성아파트로 옮겨 동갑인 부인 양정길 여사와 단출하게 산다.
담배를 줄담배로 줄기고 술은 『신경통 때문에 안 마셔야 하지만』 그렇게는 되질 않아 아주 자주 소주를 마시며 또 일요일엔 부인과 나란히 교회엘 나간다. 『어떤 기도를 하느냐구요?』 그저 빙그레 웃으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문학을 하는 사람에겐 작품을 쓰는 일이 바로 구원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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