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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제12기 「프로」 10번기 제3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프로」 10걸 전은 나와 인연이 깊다. 나는 이 기전에서는 항상 운이 좋았다.
제10기에 8위, 11기에 10위로 올랐다.
제12기 예선 최종국에서 「가노」 9단을 물리치고 본선에 들어와 「하시모또」 9단과 「가지와라」 9단 등 3명의 9단을 차례로 물리친 다음 「기따니」문하 대선배인 「가또」 9단과 결승 5번 승부를 벌이게 됐다.
이 바둑은 제3국으로 나는 여기서 이겨 3-0「스트레이트」로 「가또」를 제압, 처음으로 7대 「타이틀」중 하나를 차지하게 됐다.
그 당시 나는 「염력의 조」라는 별명으로 통하고 있었다. 「독한 마음먹은 조치훈」이라고나 해석할까.
어쨌든 맹렬히 바둑을 둘 때였다.
연초에 「사까따」에게 역전패한 상처는 말끔히 씻고 있었다.
오히려 투지가 더 강해졌음을 몸으로 느꼈다. 모든 바둑에 자신이 있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상대와 마주 앉으면 상대의 강점과 자신의 약점이 느껴진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오직 나의 장점만 보이고 약점은 몰랐다.
『이기고 싶다. 바둑은 이겨야 좋다. 돈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지면 나에게는 절망밖에 없다.』
나는 그때 두려움도 없이 이렇게 말했고 이 말이 퍼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또」는 별명이 「킬러」다. 그만큼 날카롭게 전투적인 바둑을 둔다. 그런데 그런 바둑이 나에게는 대하기 쉬웠다.
5번기에 들어가기 전 신문 기자가 『「가또」와의 대결 전망은』하고 물었을 때 『하기 쉬운 상대』라고 말했다. 「가또」는 싸움을 붙여오는 바둑을 두는데 나는 싸움 바둑을 잘 두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한 것이다.
기자는 『1년 전만 해도 자신의 바둑이 빈약하다 하더니 이제는 힘의 바둑이다, 싸움 바둑이다 하는 것을 보니 단기간에 많은 변화가 있는 모양』이라고 기사를 썼다.
이 바둑은 초반부터 「리드」했다. 흑을 든 「가또」를 맹렬히 공격했다. 흑 33까지 서로 요점을 차지하는 형세인데 백34를 내가 두게 되어 갑자기 좋아졌다.
흑은 상변이 약해져 35로 지켰을 뿐 아니라 하변의 팽창도 저지했다.
백40으로 하변 흑세에 뛰어 들었다. 「가또」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여기서가 아니면 싸울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60의 좋은 수로 흑세에서 살아나는 모양이 되었다. 흑은 69로 무리함을 알면서도 강공을 해왔다. 백74로 끊어 흑은 궁지에 몰렸다. 흑은 백의 대마를 크게 살려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중앙의 흑을 백에게 내주어야 했다. 어느 쪽이든 전세는 기울어버렸다.
흑은 어쩔 수 없이 하변에서 대마 싸움을 벌였으나 백92가 두어져 우하귀 흑 대마가 죽어서는 바둑은 끝난 것이다.
「가또」는 3연패로 물러나기는 아쉬웠던지 끈질기게 달려들었으나 내가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빈틈이 없자 1백88만에 돌을 놓았다.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일본에 온지 13년만에 일본 바둑계 정상급 기전의 「타이틀」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할 때도 떳떳한 기분이었다.
『쟁반만 한 흰 접시가 마루찬장에서 「쨍그렁」하고 떨어지고 헌집을 새로 고쳐 잔치하는 꿈을 꾸었다』고 어머니는 그때 말했다. 얼마나 이 막내아들을 생각했으면 그런 꿈을 꾸었을까, 나는 「어머님 덕이구나」하는 생각도 했다.
그날 이후 내가 걸어온 길은 고국에 계신「팬」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명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본에 왔다. 그렇기 때문에 명인이 되기 전까지는 자만할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78, 79년「슬럼프」에 빠지기는 했으나 뼈를 깎는 바둑수업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 6일 숙원이던 명인이 되었다. <계속><정리=김두겸 동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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