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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왕' 이미림, 인비 여왕 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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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올해 LPGA 투어에 데뷔한 이미림(왼쪽)이 마이어 클래식 연장전 두 번째 홀에서 우승을 확정짓자 동료들이 물을 뿌리며 축하해주고 있다. 준우승에 그친 박인비(오른쪽)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린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벨몬트 AP=뉴시스]
이미림

2012년 12월. 스물두 살의 이미림은 아버지 이대성(59)씨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아무리 말리셔도 내년에는 미국에 꼭 갈 테니 그리 아세요.”

 2010년 국내 프로 무대에 데뷔해 첫 해를 빼곤 해마다 1승씩을 거둔 이미림. 국내에서 3년을 보낸 그의 시선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향해 있었다. 막내딸이 걱정됐던 아버지는 “멀고 힘든 미국보다는 가까운 일본 투어에 가라”고 했지만 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림은 “그 전 해에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국에 남았지만 미국 투어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졌다.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세계 최고 무대에 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망설임은 없었다”고 했다.

 루키 이미림(24·우리투자증권)이 LPGA에서 열네 차례 도전 끝에 신생 대회인 마이어 LPGA 투어 클래식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이미림은 11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의 블라이드필드 골프장에서 끝난 최종 라운드에서 합계 14언더파를 기록했다. 박인비(26·KB금융그룹)와 동타를 이룬 이미림은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LPGA 투어 첫 우승컵에 입맞췄다. 이미림은 지난해 말 국내 1부 투어에서 뛰는 선수로는 유일하게 미국 투어에 도전했다.다른 선수들은 코스 전장이 길어진데다 이동거리가 많아 체력소모가 심한 미국 도전을 꺼렸지만 그는 달랐다. 이미림은 “국내 상금왕이나 다승왕이 목표는 아니었다. 현실에 안주하기 싫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말 L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응시한 이미림은 최종전을 두 달여 앞두고 왼 손목 피로골절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독하게 버텨 2위로 Q스쿨을 통과했다. 그러나 LPGA 무대의 벽은 높기만 했다. 13개 대회에서 한 차례 톱 10에 들었을 뿐 네 차례나 컷 탈락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이미림은 “부모님은 한국에 쉬러 오라고 했지만 가봐야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미국에 남아서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강한 뚝심은 첫 우승의 발판이 됐다. 박인비와 연장 첫 홀(18번 홀)을 파로 비긴 이미림은 17번 홀(파4·269야드)에서 치러진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드라이버를 잡고 승부를 걸었다. 원온을 시도하다가 공을 벙커에 빠뜨렸지만 침착한 벙커샷으로 공을 홀 1.5m거리에 붙인 뒤 버디를 잡았다. 반면 박인비는 아이언 티샷을 한 뒤 투온에 성공했지만 7m 버디 퍼트가 홀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미림은 “17번 홀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에 드라이버가 잘 돼 그린을 직접 노렸다. 2등은 한다고 생각해 자신있게 휘둘렀다”고 했다. 이미림은 이번 대회에서 평균 280.3야드의 장타를 날렸다.

 이미림은 신인왕 경쟁에도 불을 붙였다. 포인트 461점을 기록해 1위 리디아 고(17·뉴질랜드·1039점)에 578점차로 뒤진 이미림은 “리디아 고와 차이가 나긴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고 했다. 이미림의 우승은 다른 한국 선수들에게도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이미림은 “이민영(22)과 김세영(21)이 Q스쿨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미림이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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