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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로스쿨, 그 이상과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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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는 지금 로스쿨(법학대학원)의 마법에 걸린 것 같다. 로스쿨은 과연 한국 법학교육의 난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을 가르치는 '호그와트(Hogwarts)'인가. 로스쿨이 도입되면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가 목표로 한 양질의 법적 서비스 제공과 국제경쟁력을 갖춘 법조인 양성이 이뤄질 것인가. 그러나 현실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많은 문제점이 잠재돼 있다.

첫째, 가난한 자는 로스쿨에 입학하기 어렵다. 로스쿨은 많은 전임교수 확보와 법학전문도서관.모의법정 등 물적 시설의 구축 및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래서 미국은 3만 달러 정도, 일본은 100만 엔 내지 150만 엔 정도의 연간 학비가 든다. 우리도 비슷한 수준이 된다면 3년 동안 4000만원이 넘는 엄청난 학비가 예상된다. 그렇다고 정부 재정으로 지원한다면 그것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극히 일부 계층만 고급 공부를 시키는 셈이니 받아들이기 어렵다. 부자에게만 문을 열어 주고, 가난한 자에게 높은 장벽을 쌓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예고한다.

둘째,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로스쿨 3년은 법률이론 공부하기도 부족하다. 실무까지 익힌다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사법연수원까지 없애면 법과대학 4년의 이론교육과 사법연수원 2년의 실무교육을 합친 6년 교육을 로스쿨 3년 동안 마쳐야 한다. 이렇게 되면 로스쿨은 이론과 실무 어느 쪽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질 낮은 법조인만 양산하는 교육기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의 로스쿨도 3년간은 사실상 이론을 습득하고 있다. 우리의 로스쿨은 사법개혁의 완성이 아니라 개악과 퇴보를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

셋째, 국제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 세계무역기구(WTO) 자유경쟁 체제에서 국제거래.국제금융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실력은 변호사가 된 뒤 10년 이상의 실무과정에서 배양된다. 이론을 익히기도 부족한 3년의 로스쿨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법조인은 기대하기 어렵다.

넷째, 변호사 수의 대량 증가는 국민의 법률 비용 부담 증가를 초래한다. 사법연수원 수료자(연간 1000명)를 수용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변호사를 대량 배출한다면 법률시장은 과도한 공급상태가 된다. 공급의 확대는 결국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게 된다. 미국은 1950년대 초 로스쿨을 도입해 50여 년 시행하는 과정에서 징벌적 배상제도, 집단소송 등 새로운 제도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법률 비용의 증대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귀속된다. 의료시장에서 의사의 대량 배출이 의료수가를 낮추지 못하고 결국 의료비를 두 배 이상 부담시킨 우리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은 오늘날 엄청난 법률비용 때문에 변호사 망국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섯째, 대학교육의 정상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로스쿨이 시행된다면 학부 학생들은 로스쿨 입학을 위해 학문은 외면한 채 학점에만 매달리는 과도한 경쟁을 할 것이다. 필시 대학의 '로스쿨 학원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 역시 파행적인 대학교육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로스쿨은 지금의 법과대학과 다를 바 없는, 미국 제도를 흉내낸 '무늬만 로스쿨'이 될 것이다. 2004년 4월 로스쿨을 개교한 일본은 교수들의 능력 부족, 질문과 응답의 단순한 강의방식, 판례분석 정도에 불과한 강의 내용, 지원자 수 급감 등의 문제로 벌써 실패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로스쿨 시행에 앞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올 9월까지 법률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그 촉박한 일정 때문에 로스쿨의 부실화가 우려된다. 자칫 사법제도의 대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그 결과는 국민에게 엄청난 비용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진정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때다.

하창우 변호사.대한변협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