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불을 통해서 생명의 근원을 표상-이성선씨의 『불꽃바다』|도시의 까치를 소재로 자기성찰-손기섭씨의 『슬라브 위의 까치』|삶·현실에 대한 자신의 입장 밝혀-김종해씨의 『장님을 위한 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시란 비록 자기독백형식에 그 본질이 있다 하더라도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될 수는 없다. 그 역시 다른 예술양식과 마찬가지로 그를 둘러싼 세계와 대면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변하고 행동해야 되기 때문이다. 시인이 세계와 관련을 맺는 방식은 그가 구현코자하는 이념의 독창성에 의해 각기 다를 수 있으며, 또 달라야 하겠지만 문학의 기본적 속성으로서 보편성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어떤 일반적인 유형에 따를 것임도 주지의 사실이다.
주관과 객관, 또는 시인과 그를 둘러싼 세계라는 이완적 관계에 있어서 이에 대처해 나아가는 시인의 태도에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첫째 유형인 「보는 시」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이성선의 『불꽃바다』(한국문학 11월호)와 손기섭의 『「슬라브」위의 까치』(한국문학 11월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불꽃 바다』는 바다에서 탐구된 존재론적 의미가, 『「슬라브」위의 까치』는 까치를 통해서 자각된 운명론적 인생관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성선은 해돋는 바다, 수평선 위로 문득 떠오르는 태양 속에서 불을 발견하고 그 불의 상상력을 통해 남녀 성 결합을 유추해낸다. 물과 불의 상극하는 물질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리비도」의 원천 혹은 생명의 근원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러한 존재론적 의미 탐구는 시인이 사물을 순수 인식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손기섭의 시에서도 운명론적 삶의 태도가 깊이 성찰되어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이러한 자기성찰은 내적 요인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사물 즉 「슬라브 지붕 위에 앉아있는 까치」의 인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푸른 숲, 싱싱한 자연을 빼앗기고 도시 「슬라브」지붕 위에서 공해로 죽어 가는 한 마리의 까치는 지인에게 있어 상상력에 불을 지르는 촉매가 된다.
둘째 유형인 「말하는 시」의 대표적인 예로서 우리는 김종해의 『장님을 위한 시』(문학사상 11월호)와 권달웅의 『뚝길』(심상 10월호)을 들 수 있다. 이들 시는 모두 자신들의 이념, 혹은 현실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시를 통해 전술하고자 한다.
『장님을 위한 시』가 집단적 이념을 대변하고 『뚝 길』이 개인적 이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구별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두 작품은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의미를 추구한다기 보다는 삶과 현실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되고 있다.
전자는 황폐한 이 시대의 삶을 공동체적 자각과 「휴머니즘」에 의해 극복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후자는 난세를 살아가는 개인적 삶의 윤리를 담담한 심정으로 제시해 준다. 이 경우 이들 시에 동원된 장님·지팡이·호루루기·둑길 등의 사물은 시인의 인식대상이 아니라 관념의 전달 매체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시인·충남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