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장벽넘은 청바지·디스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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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본사 이근경특파원 동「베를린」방문기
암울한 회색빛 분위기의 「오소독스」한 공산국가-.
동독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흔히 이 정도의 피상적 선입견에서 그쳐 버린다.
그러나 모든 공산국가에 스며들고 있는 자유화와 서구화의 물결은「엄격」한 공산국 동독에도 조금씩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가져오고 있다.
동으로는 최근의 「폴란드」사태, 서로는 「보다나은 반쪽」인 서독의 영향은 이 같은 추세를 더욱 부채질하고, 이사이에서 동독은 「불안한 몸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월13일부터 25일까지 국제탁회련맹(IPU) 총회 취재를 위해 다녀온 동「베를린」의 인상이다.
동독국립 「오페라」좌.
『돈·조반니』의 막이 올랐다.
호색귀족 「돈·조반니」는 이미 약혼한 몸인「돈나·안나」를 꾀어내고, 미모의 처녀 「엘비라」를 유린하고, 농부의 아낙까지 짓밟는다.
일찌기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제국주의 오페라』라고 지탄받기도 한 작품. 그러나 동독관객들에겐 이젠 재미있는 희가극일 따름이다.
관객석에는「파리」의 어느 번화가에도 어울릴 성장을 한 중년부부들, 열띤 포옹중인 청바지 남녀-.
무대건 아래이건 「오페라」좌안에서 이곳이 공산 국가임을 실감하기는 힘들다.
서구화의 물결은 문화와 「패션」에서 가장 먼저 찾아지는 것일까.
기자의 체재중에 동독이 자랑하는 국립 미술관에선 『20세기「키스」전』이 개최중이었고 「애인」이란 지극히 「정유물론적」인 영화가 『현대판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선전문귀를 달고「히트」중이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복처럼 된 청바지와「디스코」.
동독의 청소년들은 이젠 서독산 백마표 청바지 대신 미제인 「리바이스」 만을 찾는다.
청바지 「히프」부근에서 흔들대는「카세트」녹음기에선 「디스코·리듬」이 기총소사처럼 행인들의 귀를쏜다.
「레코드」점은 「디스코」판을 사려는 청소년들로 만원이다.
동독서 만난 한 서방기자는 이 같은 생활의 서구화풍조는 서독의 방송과 여행자, 그리고 「인터숍」때문이라고 간만히 풀이했다.
연간 4백60만명에 이르는 서독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데다 72년의 양독협정에 따라 서로의 방송시청이 가능해졌고, 서구상품을「인터숍」이란 전용점에서 팔고있어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서혈화는 아직도 피상적인데 그칠 뿐 보다 본질적인 면을 살피면 아직 동구공산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경직성과 피해의식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상징적인 한 예가 동서「베를린」의 사이의 새로운「병풍」이다.
동「베룰린」에서 가장 높은 「베를린·호텔」37층의 전망대에서도 서「베를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서「베를린」의 「악셀·슈프링거」「하우스」의 25층 식당에서 본 동「베를린」역시 안개속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동「베를린」에서 쌓아올린 거대한 고층 「아파트」군이 동서간의 친계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동서 「베를린」의 통로인「체크·포인트·찰리」로부터 「슈프레」강에 이르기까지 경계선을 따라 줄지어선 고층 호화「아파트」군은 사실은 동「베를린」의 구차스런 시가지를 감추기위한 「꽃병풍」이자 「전시물」이라고 한 서방기자가 말해주었다.
이와 비슷한 꽃 병풍·전시물들은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IPU 대표단이 관광차「드레스덴」을 방문했을 때였다.
일요일인데도 이상하게 「드레스덴」의 관청가엔 승용차가 빽빽히 주차해 있었고,「해방노」라는 「드레스덴」의「명동」거리엔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과 유모차를 앞세운 주부들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전시용 동원부대랍니다』고 한 기자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동 「베를린」에서 가장 크다는 「첸투름」이 백화점의 허술한 상품을 본다음 서「베를린」주민들이 곧잘 찾는 「아파트」촌의 상가에 가보면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밍크·코트」에서 자기류, 일본식품까지 없는게 없을 정도다.
또 하나의 「꽃병품」인 것이다.
이 같은 「오시벽」은 서독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데서 나온 것이다.
경쟁의식은 사소한 대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의 동독의 피해의식은 「폴란드·알레르기」로 집약된다.
동독사람과 이야기하다
『「폴란드」가 어쩌구』하고 말문을 열면 상대방이 아예 자리를 떠버릴 장도다.
「운터·덴·린덴」가의 「폴란드」대사관앞엔 행인의 발길조차 찾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있는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 「폴란드」사태는 전혀 「남의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폴란드 사태가 한창일 때 동독의「매스·미디어」는 한마디의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같이 「폴란드」에 대한「알레르기」원인은 몇가지 경제실정을 살펴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우선 식료품점이나 식당 앞에서는 언제나 장사진이다.
몇십분에서 1시간 넘어까지 기다려야하는 생필품 수급난이 문제다.
「오일렌슈피겔」이라는 주간지가 동독사람을 가리켜 「기다리는 경기에 천재」라고 비꼬았을 정도이다.
비단 생필품만이 아니다.
운전면허를 얻으려면 최고 3년을, 「바르트부르크」라는 독일제 4기통 승용차를 구입하려면 8년을 기다려야한다.
주문한지 몇달이 넘도록 침대가 배달되지 않아 결혼까지 연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승용차 있음』이란 구혼광고가 신문에 게재되는 등 물품 부족은 「희극」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물가는 주식에 관한한 그런대로 안정되어 있다.
감자 5kg에 85「페니히」(약 2백98원), 식빵 1Kg은 52「페니히」(1백81원)로 서독보다 4분의 1쯤의 싼값이다.
그러나 일단 구전제품이나 의류에 이르면 전혀 달라진다.
1백30ℓ짜리 냉장고 1대가 1천4백「마르크」(47만6천원)이며 중형 세탁기는 1천4백50「마르크」(50만7천5백원), 순모양복 한벌에 8백 「마르크」(28만원)로 서독보다 두배이상 비싸다.
경찰간부의 월급이 l천4백20「마르크」(48만2천원)정도라니 1년내내 양복은 고사하고「와이셔츠」한벌 제대로 해입기 어렵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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