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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와 허례의 풍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 대통령은 7일 분별없는 혼수경쟁 등 낭비와 허례허식 풍조를 금하고 가정의례의 건전화를 위한 범국민적 정화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하는「관혼상제의 건전화」계획을 내각에 지시했다.
이 지시는 관혼상제로 대표되는 가정의례가 낭비와 허례로 변질돼 퇴폐적 국민의식을 심화시키고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며 서민생활의 불변을 유발하여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저해할 뿐 아니라 정부불신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소산으로 보인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통상적으로 말하지는「북의 남침」과「안보」에 직결되는 외적침입의 위기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정신내부에 기생하여 드디어 전신을 마비시키는 자체 내 부패요인에 대한 강한 문제인식의 자각으로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외적에 대한 경계는 경계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으나 내부의 적은 뚜렷한 의식없으면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새 시대」「새 국가」를 지향하는 오늘의 시점에서「내부의 적」으로 부각된 국민의식의 부패와 괴리를 척결하는 일은 초미의 과제라 하겠다.
그렇다면 그「내부의 적」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정권적 차원에서 볼 수 있는 반대세력이나 일사불란한 정치행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대자들일 수 없을 것이다.
사회를 부패시키고 국민의식을 분열 파괴시키는 참된 의미의「내부의 적」은 사회지도층의 무자각·안일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전 대통령이 그 같은「내부의 적」을 동찰하고 그의 척결을 다짐하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하겠다.
너무도 소상하게 문제를 알고 지적하였듯이 우리 사회일부에서는 혼례를 치르면서「아파트」·승용차·엄청난 패물을 지참케 하는 등 혼수경쟁과 과도한 중매비, 도를 넘는 축의·조의금을 주고받는 폐습이 미만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항간에는『딸 하나 시집보내는데 최소 1천만원은 있어야 한다』고 하는 소리도 나들고 돈 없어서 장가들지 못하겠다고 하는 소리도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면세점 이하의 근로자가 전국근로자의 4분의 3에 이르고 대다수 서민층생활이 넉넉하달 수 없는 처지에 과연 그 같은 풍문이 가당할 일인가 한번 생각게 된다.
정상적인 봉급생활올 해가면서 고교를 나온 미혼여성들이 혼수장만을 위해 과연 3년 동안 얼마나 모을 수 있을 것인가.
합리적 사고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허례허식과 낭비의 폐풍을 우리는 혼례와 상례, 회갑연과 제례에서 수다히 보아왔다.
또 이 폐풍을 광정하는 시도로서 이미 몇 차례 정부의 시책을 보아왔다.
정부는 63년에「가정의례준칙」을 제정 실시하였고 73년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도 있다. 권고적 방식의 준칙도 경험했고 법적금지사항의 실례도 경험했다.
그런 준칙과 법금이 10년을 지나지 않아 오늘날 다시 사회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그에 따라 법은 고치고 가다듬어 적용해가야 한다. 그러니까 정부는 「가정의례」의 폐풍을 순화하기 위해 시대에 알맞는 실효성 있는 새로운 규정을 마땅히 정해 운영해야 한다.
그리나 법과 준칙에 병행해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국민의식의 혁신, 올바른 생활풍습을 배우고 키워갈 수 있는 미풍교화의 노력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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