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문제] 'FAST콜' 새 사업자 자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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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개인택시들은 통합 FAST콜 번호(041-554-1000)를 달기 위해 기존 콜 번호(041-623-6000)를 뗀 채 4개월째 운행하고 있다. [사진 = 채원상 기자]

천안시가 예산을 지원하는 브랜드택시 통합콜센터인 ‘FAST콜’을 운영할 새 사업자의 자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택시에 갖춰야 할 장비·시스템이 새 사업자의 입찰 제안 내용과 다르게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따라 천안시는 자체 감사에 들어갔다.

“콜 시스템 공급 능력 없는 사업자”

‘천안시는 FAST콜 위탁운영사업에 대한 진실을 스스로 밝혀야 합니다. 충분한 검토와 사전 준비 없이 천안시와 FAST콜 법인(천안시 FAST콜택시)이 사업자의 말만 믿고 계약했다가 각종 문제점을 낳고 있습니다. 이를 방관했다가는 택시조합원들에게도 큰 피해가 이어질 게 뻔합니다.’

지난달 초 한 개인택시 조합원이 천안시외버스터미널과 순천향대 천안병원 같은 다중이용시설 5곳에 통합콜센터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알림판을 붙였다. 대자보 형태의 알림판에는 천안시와 FAST콜 법인이 추진한 통합콜센터 위탁운영사업에 대한 각종 문제점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알림판을 붙인 김모(56)씨를 비롯해 일부 개인택시 조합원은 천안시와 FAST콜 법인이 우선사업자로 선정한 L업체는 통신사업자로, 전반적인 콜 시스템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도 통합콜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L업체가 입찰 때 장비·프로그램 공급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제안했지만 실제 계약은 검증되지 않은 장비와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하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FAST콜 사업자로 선정된 L업체가 시범적으로 택시에 장착한 내비게이션.

실제 FAST콜 법인과 L업체가 작성한 계약서를 보면 택시에 장착할 콜서비스 단말기가 내장된 내비게이션과 빈 차 등에 내장된 통신모뎀이 제안서에 있는 업체의 제품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L업체는 당초 제안한 내용과 다른 업체의 시스템을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했고, 천안시와 FAST콜 법인은 이를 알면서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내비게이션과 통신모뎀은 통합콜센터와 연결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장비다.

천안시 자체 감사 돌입

이 같은 일부 택시조합원의 지적에 대해 천안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시는 지난달 11일 이들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L업체는 입찰 시 컨소시엄으로 참가하지 않았고 단독으로 들어왔다”며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해 L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는 또 장비·프로그램 공급업체가 바뀐 부분에 대해서는 “L업체가 협상 과정에서 제품의 성능과 편리성을 고려해 FAST콜 법인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를 제기한 택시조합원들은 천안시의 답변대로라면 L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컨소시엄이 아닌 단독입찰의 경우 L업체는 입찰 자격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FAST콜 법인 사업추진위원회가 지난 4월 천안시를 통해 공고한 ‘천안시 FAST콜택시 위탁운영사업자 선정’에 따르면 입찰 참가 업체는 위치정보시스템(GPS) 사업자 허가를 받은 업체로서 GPS를 이용한 택시 콜 시스템과 관제센터를 구축·납품 또는 운영 실적이 공고일 기준 최근 4년 내 2개 시·군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L업체는 사실상 통신사업자이기 때문에 컨소시엄이 아닌 단독으로는 시스템과 장비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게 일부 조합원과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L업체는 입찰 제안서에 지방자치단체 2곳에 콜택시 차량관제시스템을 구축한 실적의 경우 통신망 작업 참여 사실만 밝혔지 시스템·장비 납품 여부는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시·FAST콜 법인 방관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심사위원들이 참석한 입찰 제안 설명회에서 L업체가 아닌 장비 제공 업체의 관계자가 관련 사업을 설명했다는 점이다. L업체 천안시의 말대로 단독으로 입찰에 나왔다면 직원이 직접 심사위원들에게 사업을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결국 입찰 제안 설명회 때는 L업체 대신 장비 제공 업체가 제안을 하고 실제 계약에서는 사업을 제안한 업체는 빠진 것이다. 설명회 때 제안한 장비와 시스템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해 심사를 통과한 뒤 제안 내용과는 다른 장비와 시스템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셈이다.

각종 문제점 제기에 대한 천안시의 입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일부 개인택시 조합원은 사업 무효화를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알림판을 붙인 김씨는 “사업자로 선정된 L업체가 당초 제안한 내용대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는데도 천안시와 FAST콜 법인이 이를 묵인하고 있다”며 “천안시가 무자격 업체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천안시 교통과 관계자는 “L업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치정보사업 허가서와 위치기반서비스사업 신고필증을 모두 갖춰 입찰 자격요건을 갖췄다”며 “장비와 시스템이 제안 내용과 다른 이유는 FAST콜 법인 측에서 더 좋은 사양의 제품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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