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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문시대」벗어나 면학에 힘쓸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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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강맞은 대학가…앞으로의 과제 교수·학생 특별좌담
참석자 김대환<이대교수·사회학> 정재호<서울대·2년> 유희문<연세대·3년> 박연<이대·3년>
12일 서울 대학교가 휴강 1백18일만에 정상수업에 들어감으로써 전국의 대학가는 모처럼 천기를 되찾게 되었다.
격변과 혼란의 와중에서 갈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만 되풀이하던 대학이 진리만을 탐구하는 상아탑으로서의 위치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안정됨에 따라 이제 대학은 미래의 주인공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전당이라는 자각을, 대학생은 한국의 장래를 걸머 질 역군이라는 투철한 사명감을 각각 새롭게 인식해야할 때다.
전국대학의 개강을 맞아 앞으로 우리 대학과 대학생이 극복해야할 과제는 무엇이며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것인지 교수·대학생의 특별좌담을 통해 들어본다.

< 편집자주 >
김교수- 어떤 사회든 변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진통을 겪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 진통을 얼마나 슬기롭게 넘겨 우리에게 유익한 교훈과 경험으로 살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겠지요.
지난 4∼5월의 학생 「데모」사태때는 정말 온국민이 함께 진통을 겪어야 했는데 4개월간의 긴 휴교를 끝내고 다행히 개강을 맞게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한번쯤은 지난날을 들이켜 반성하고 정리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나오신 학생들은 휴교 중 어떠한 생각들을 했는지 궁금하군요.
정군 = 휴교 중 친구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무력감에 빠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는 일시적인 향락에 빠지기도 했고….
그런데 차차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바뀌더군요.
우선 대학문은 하루빨리 열려야겠다는 것이었지요. 공부를 하지않는 상황에서는 다른것까지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또 우리가 그동안 너무 흑백논리에 치우치지 않았나하는 반성도 하게 되더군요.
타협해 볼 수있는 마음의 여유같은 것도 갖게되었습니다.
유군 = 휴교가 되면서 많은 학생이 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하는일이 올바른 것이었다고만 믿고 그반대의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룹·스터디」같은 것을 해봐도 자주 허탈감만 들고 한때를 즐기자는 식의 사고방식이 많은 학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박양 = 학생들에게는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어른들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학생으로서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한 의견 제시가 「데모」와 같은 과격한 행동으로 표현되는데 문제가 있는것이지요.
문제는 어른과 우리학생들의 이해의 폭에 있는것 같아요.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이해의 폭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다면 여러 가지 문제는 없을 듯 해요.
김교수 = 학생 여러분들이 그간의 어려움을 딛고 자기를 회복해나가는 것을 보니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2차대전 당시 「나치」가 「파리」를 1주일만에 점령했을 때 「파리」시민들의 행동양식이 두가지로 나타났다고해요.
그 하나는 허무주의입니다.
좌절과 실망끝에 순간의 향락을 위한 찰나주의에 빠진거죠.
또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현실 참여 자세였습니다.
지난봄 우리학생들은 지나친 「이모셔널리즘」(감정에 치우친 행동)에 흘렀던것 같아요.
역사발전이란 결코 그런것에 의해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냉전한 인식과 점진적인 개혁속에서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지요.
대학이란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쪽으로든 너무 전편 일률적이었던 것도 반성해야해요.
유군 = 지난달의 우리사회는 모든 것에 정치가 우선하는 풍토였습니다.
지난 4∼5월의 학생 「데모」는 어쩌면「보다 다양성 있는 사회에의 풍경」「그렇지 못한 우리사회에 대한 부정」이 합쳐진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김교수 = 인간은 어떤 형태든 힘을 갖고자 합니다.
거기에는 정치적인 힘도, 경제적인 힘도, 문학 예술적인 힘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우리한국인들은 너무 정치 지향적이예요. 모든것을 정치적 차원에서, 정치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하려 듭니다.
정치문제만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게 결코 아닌데 말이죠.
이제는 그런식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대학생 지식인들부터 이런 후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해요. 한 사회의 발전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적 측면이 강력히 뒷받침할 때 이루어진다는 포괄적 안목을 갖추어야 진짜 지성인이 아니겠습니까?
정군 = 지난4∼5월을 되돌아보면 교정에 갖가지 격문이 나붙곤 했는데요, 그중에는 공감이 가는 순수한 내용도 있었지만 우리들끼리도 「과연 저런것을 쓸수있을까」할 정도로 색깔이 끼었거나 특정인에 관한것도 적지 않았어요.
그런점은 우리도 냉정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김교수 = 그 의사 표현이란 것도 대학의 고유기능인 「아카데미즘」을 기초로 이루어져야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상식은 있지만 지식은 부재하는 사회였습니다.
4∼5월의 학생 「데모」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것도 그들의 주장이 지식인다운 학문적 고민끝에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자기식의 이념 결정을 해놓고 국민들 보고 무턱대고 따라오라고 하면 그들이 따라올까요? 민주주의는 「엘리트」민주주의와 대송 민주주의, 두가지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다분히 「엘리트」민주주의였어요.
그것을 대중이 그대로 따라간다고 생각해서는 큰 오산입니다.
민주주의 이야기가 나온김에 정말 한국사회에 토착화해야 할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박양 = 학생들을 포함해서 지식인들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용어자체에서 우선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어차피 민주주의라는 것이 서구적 토양에서 싹트고 피흘리며 자라온 것이라면 우리풍토에 알맞는 우리식의 수용방법이 필요한데도 말이예요.
이유는 이제까지 한국적 민주주의란 용어에 대해 국민들에게 「이러한 것이 진짜 한국적 민주주의다」라고 납득이 갈만한 설명도 없었고 그것을 시행해보니 이런 착오가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고쳐나가겠다」고 충분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교수 - 흔히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기능」과 「제도」라는 점에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특히 후진국에서는 그런 경향이 짙어요.
「기능」과 「제도」만 받아들인다면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라도 우리것이 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게 그 「기능」과 「제도」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것이 담고 있는 자유·평등·정의를 얘기하는거죠.
이러한 진짜 민주주의를 어떻게 우리식으로 소화하고 토착화해야 하는가가 우리들 지식인들의 과제입니다.
그런데도 지난날에 보면 「한국적 민주주의」를 입에 담는 것조차 「터부」시하고 그것을 옹호하면 금방 「반지성」「어용」으로 몰렸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유군 = 제 생각에도 학생들이 지난 「데모」사태를 겪고 냉정을 되찾는 과점에서 그런 점들을 꼼꼼히 저울질하고 있는 듯 해요.
박양 = 어른들이 흔히 우리를 야단칠 때 「지나친 흑백논리다」「자제심이 없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우리를 하나의 완성된 인간으로 보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성장중에 있는 학생이거든요.
그런데 폭넓고 깊이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교육은 하지 않으면서 자제하지 않았다고 힐책하는 것은 부당해요.
부모님들만해도 무조건 「공부만해라」「말조심해라」「학교활동도 하지말라」고 요구하시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꼭 학문만은 아니잖아요?
김교수 = 박양의 말대로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저 ○×식으로만 가르치고. 사고의 깊이와 폭은 없이 그저 하나의 현상을 ○×식 안목으로 바라보니까 단순 흑백논리밖에 나오지 않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합리주의와 논리가 통하는 시대가 돼야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새시대는 계몽주의시대」라고 부르고 싶어요.
우리나라도 어느정도의 경제기반은 닦았으니까 점진적으로 권력도 분산되어야하고 경계도 생산의 문제에서 분배의 문제로 눈을 돌려야 할겁니다.
흔히 장기집권은 그 집권자의 「퍼스낼리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에 문제가 있을수도 있거든요.
아까부터 거듭되는 얘기지만 한 현장을 분석 할때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를 갖추어야해요.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유군 = 우리학생들이 어떤 주장을 펼 때 충분한 학문적 근거와 합리적 논리없이 행동이나 폭력에 호소하려 한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과 다를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부재의 사회는 경계하고 끊임없이 사고·비판·연구해서 그 공부한 것을 합리적인 「채념」을 통해 표현해야겠어요.
박양 = 그동안 고민하며 지냈넌 과정을 소중한 경험으르 삼아 쉽게 좌절하지 않고 사회의 발전적 요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겠지요.
김교수 =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대학이 「아카데미즘」을 되찾아 대학 문학 창달에 힘써야겠어요.
「헤겔」의「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는 자립과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살수있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또다시 학생 「데모」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책임은 누가 질것입니까.
지적으로 성숙된 대학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수와 학생이 함께 노력해봅시다.
정군 = 우리가 비판해온 기성세대의 잘못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런점에서 학원의 안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유군 = 지난 4∼5월 한참 「데모」가 열기를 뿜을 때 친구들끼리 「과연 대안이 있느냐」에 대해 토론해 본적이 있어요.
현실을 이상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일단은 유보하는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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