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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전대통령의 빈번한 민정시찰은 새 대통령의 면모를 새삼 돋보이게 한다. 시골의 이 사무소에서부터 서울 뒷골목의 암야행에 이르기까지 전대통령은 민정의 밑바닥을 눈으로 보고, 귀로 직접 들으려 하는 것 같다.
엊그제 자정 무렵엔 서울 도심의 쓰레기 하치장에서 밤새워 일하는 청소원들을 격려해주었다.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이때 청소원들에게「금일봉」을 나누어 준 일이다. 더구나 그 액수가 2천원 이었던 사실은 시정의 심심치않은 화제가 되었다. 전대통령은 어느 노점상 여인으로부터는 6백원 어치「도너츠」를 사고 1천원을 주었다. 금일봉 4백원.
사람들 나름으로는 반응이 분분했지만 새 대통령의 새「스타일」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새겨 보게 된다.
사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외의「금일봉」은 반드시 그 액수가 많아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호의와 격려의 표시일 뿐이며 어느 특정인에게 횡재의 기회를 안겨주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카터」는 미국의 대통령치고는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던「민정」대통령이다.
「그라스·루트」(대중)라는 말은 그의 정치대명사나 다름없다. 민정시찰「스타일」도 그는「타운즈·미팅」이라는 방법을 즐겨 쓰고 있다. 어느 날 슬쩍 백악관이나 별장을 떠나 소도시의 민가에 숙박하며 그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토론회를 갖는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반상회를 주재하는 것이다.
이때「카터」대통령이 내놓는「금일봉」이 있다. 그의「폴스터」여론조사전문가)를 시켜 봉투를 전하는 것이다. 금일봉의 액수는 흔히 1백「달러」를 넘지 않는다. 6만원 상당의 돈이다. 숙박비와 토론회의 음료수대. 세계 최대 상국의 원수가 내놓는 금일봉치고는 뜻밖이다. 그러나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자연스럽고 기분이 좋을 정도의 돈이다. 이것이 바로 금일봉의 매력이다.
우리나라 고사를 보아도 역시「금일봉」은 그런 정도다. 숙종(이조 19대주)은 미복연행을 자주 한 임금으로 특히 일화를 많이 남겨 놓고 있다. 언젠가는 동소문 밖에서 나무를 파는 촌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지게 위에 장작은 그대로 있었다. 임금은 그 나무를 몽땅 사주는 것으로「금일봉」을 대신했었다. 떡장수를 만나서도 역시 그랬다. 세조(이조7대왕)도 미행을 자주 했었다. 그는 문장에 능한 무명의 선비를 보고 미관의 벼슬을 준 일이 있었다.「금일봉」보다는 훨씬 더 뜻이 있어 보인다.
사실「금일봉」의 풍조는 예사롭게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청소원에게 필요한 것은 금일봉의「횡재」가 아니라「생활안정」의 기회를 갖는 일일 것이다. 전대통령이 건네준 2천원은 그런 뜻에서도「금일봉」이 아니라 수고비였음에 틀림없다. 한결 현실적이고 인간미를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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