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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송금 특검 17일 시작] 産銀 대출압력은 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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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가 17일 험난한 일정을 시작한다.

이용호 게이트 등 과거 사건과 달리 검찰 수사를 거치지 않았고, 정치.경제.대북 문제가 한데 얽힌 복잡한 사건이다.

김대중 정부가 제기한 '통치행위'라는 고려 요소와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헤쳐나갈 것인가도 특검팀에 던져진 숙제다. 향후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핵심 사항들을 짚어본다.

◆5억달러의 흐름=특검팀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김대중 정부가 시인한 송금액 5억달러의 흐름을 쫓는 일이다.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이 송금 사실만 시인했을 뿐 구체적인 송금 루트와 명목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수사팀은 이른 시일 내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현대상선 계좌에서 흘러나간 돈의 흐름을 추적할 태세다. 동시에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의 주요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우에 따라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등을 수사 초기 전격 소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심은 5억달러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정법 위반 여부다. ▶한광옥(韓光玉)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산업은행 측에 대출 압력을 행사했는지와 ▶송금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하게 된 배경과 돈세탁 여부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상회담 대가 여부=정몽헌 회장은 지난 2월 "정상회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북에 송금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정상회담 성사 대가라는 점을 어느 정도 암시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현대 측이 밝힌 7대 사업이란 것이 구체적이지 않고▶당시 자금난에 빠졌던 현대상선이 이 같은 거액을 투자했으며▶6월 12일로 예정됐던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됐다는 점 등이 정상회담 뒷거래용이라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다.

만약 현대가 수천억원을 대북 사업권 확보가 아닌 정상회담 준비금으로 썼을 경우 현대측 관계자와, 이를 주도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모두 배임의 공범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부도 위기설까지 돌던 현대그룹이 거액의 돈을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지불했다면 이는 명백한 해사(害社) 행위며, 이를 강요한 공직자 역시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가 송금, 누수는 없었나=정부가 밝힌 송금 액수는 5억달러지만 정치권과 정보기관 등에서는 '1조원'설이 정설처럼 돼있다. 1조원은 8억달러다. 3억달러 정도가 더 보내졌다는 얘기다. 사실로 확인된다면 의혹은 더욱 커진다. 정부가 3억달러를 감추려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목상 대북 송금을 한 것으로 돼있는 돈 가운데 일부가 중간에서 새나가 다른 용도로 쓰였을 경우에는 수사 방향이 급선회할 수 있다. '통치행위'논리와는 무관한, 다른 성격의 범법 행위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적지않은 돈이 정치자금으로도 쓰였다는 소문이 있다.

◆예상되는 변수=이번 수사의 성패를 가름할 첫 변수는 해외로 나간 돈의 흐름을 잡아내느냐다. 국내 수사기관은 현대에서 송금한 돈이 해외의 어느 계좌로 전달됐는지까지는 확인 가능하지만, 그 돈이 다시 해외 여러 계좌를 돌았을 경우엔 추적하기 어렵다. 결국 김대중 정부 관계자나 현대 측의 말을 믿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

그러나 특검 관계자는 "해외로 나간 돈이라고 추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고 밝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또 현대의 대북 송금은 처음부터 비밀리에 진행돼 왔기 때문에 현대의 회계장부 상에는 송금 부분이 다른 명목으로 허위 기재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분식(粉飾)회계를 하지않고는 거액을 보낼 방법이 없다"면서 "현대의 분식회계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 규모가 밝혀지면 현대는 물론 국내 경제계에도 상당한 충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수사에, 아니면 최소한 수사결과 발표 범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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