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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김치에 거미·파리·개미 넣고 하는 말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마트에서 구입한 김치에 거미·파리·개미 등 벌레를 넣고 보상금을 요구한 '연인 블랙컨슈머'가 지난달 29일 붙잡혔다. 이들은 5개월 동안 300여 개 업체를 협박해 3500만 원어치의 금품을 뜯었다. 이들은 소비자 피해 보상절차가 까다로운 대기업다는 중소업체를 노렸다.

이처럼 블랙컨슈머들의 행태도 진화하고 있다. '트렌드'가 있다. 그들의 최신 트랜드는 "언론에 제보하겠다" "SNS·블로그 등을 통해 온라인에 공개하겠다"라고 주장하며 기업에 거액을 요구하는 양상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소액을 요구하는 '생계형 블랙컨슈머'들이 판을 친다. 책임소재를 밝히기 어려운 원인 불명의 사소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에서 주인공(백윤식 ) 이 과자회사에 초콜릿 함량이 모자란다며 항의 전화를 하고 있다. 그는 이런 수법으로 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다.

블랙컨슈머로부터 식품업계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10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영업자의 이물 발생 의무 보고 사항'과 '관할 관청의 원인규명 절차'를 골자로 한 '보고 대상 이물의 범위와 조사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 고시했다. 식품 이물 의무 보고 제도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건전한 식품 소비 문화를 정착시키는 목적으로 세계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 위해 요소인 식품 이물에 대해 과도한 수준의 규제 관리 정책으로 인해 국가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식품이물에 대해 국가가 직접 관리하지 않고 있으며 범죄 행위 및 인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친 경우에만 행정조치를 실시한다.

'식품 이물 의무보고 제도'는 당초 식품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높일 것으로 기대됐으나, 실제 시행 후에는 오히려 블랙 컨슈머로 불리는 악성 소비자를 양산하는 부작용도 초래했다. 이를 처리하기 위한 정부의 확인 절차와 기업의 대응에 드는 시간적,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2012년 상반기 식약처에 신고된 총 이물 접수 건수 1756건 중 제조 단계 혼입으로 확인된 건수는 133건으로 7.5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소비나 유통 단계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1년 전체 식약처 접수 이물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총 이물접수건수 5,631건 중 제조단계 혼입은 431건으로 확인돼 7.65%를 나타냈다. 결국 제조단계 혼입은 10건 중 한 건도 채 안 된다는 얘기다.

식품이물 사고 해결을 위해서 규제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식품업체에 대한 식품안전 관리기준은 더욱 강화하되, 의무 신고 범위를 금속이나 유리 등 치명이물로 한정하고, 그 밖의 이물 처리에 대해서는 기업에 어느 정도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식품이물 사고 해결을 위해서는 블랙 컨슈머 근절이 우선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이들을 막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불안이 조성되고 피해가 늘어날 뿐이다. 블랙컨슈머에 대한 강력한 처벌기준 마련과 실질적 시행, 그리고 관련 제도의 합리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은 클레임 고객을 무조건 블랙컨슈머로 의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통계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 클레임에 대한 기업의 명확한 대응 원칙과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반드시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별 대표적인 블랙컨슈머 사례에 대해 식품기업들이 반응하는 자세를 물었다. 블랙컨슈머를 판별하는 기업들의 노하우도 이목을 끈다.


■외식브랜드 A사

"최근 블랙컨슈머가 경찰에 검거됐다. 모 커피전문점 음료에서 유리조각이 나왔다고 자해한 뒤 합의금을 과다 요구해 덜미가 잡혔다. 경찰조사를 통해 이 블랙컨슈머는 2년 전 A사브랜드에도 피해를 입힌 사례가 드러났다. 당시 A사는 클레임 제품에 대해 외부 검사까지 철저히 했다. 분명히 제품엔 이상이 없었으나 도의적 차원에서 병원비 실비만 정산해줬다. 그럼에도 그 블랙컨슈머가 언론에 제보해 부정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A사가 언론사에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기자는 고객 이야기만 듣고 보도를 했다. 정말 속상하다. 하나의 매장에서 문제가 생겨도 전체 브랜드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이건 A사 잘못이 전혀 없는데도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오보됐다. 그런데 이분이 계속 블랙컨슈머로 활동하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이 블랙컨슈머의 잘못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에 언론사에 요청해 2년 전 보도된 부정기사를 삭제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미 2년 전 뉴스인데… 이미 당사는 당시 피해를 입었다. 이에 대한 보상은 어디서 받아야 할까. 거액의 보상금 지급 요청을 무턱대고 들어주는 곳은 없다. 언론이나 SNS 허위 사실 유포 시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가공식품 브랜드 B사

"최근 1~2년 사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큰 액수나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들보다는 소액을 요구하는 '생계형 블랙컨슈머'들이 상당히 늘어난 편이다. 지난해,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는 동네 인근 마트에서 식품업체 B사의 제품을 구입해 개봉해 보니 제품 속에서 아이 손톱 크기의 딱딱한 이물이 발견됐다며 B사 고객상담실로 접수했다. B사는 고객불만을 접수하고 곧바로 방문약속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A씨는 B사의 방문을 거절하고 무작정 CEO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고객지원부서 수준에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 CEO를 직접 만나 피해를 보상받고 재발방지를 약속받겠다'는 것. B사의 고객전담부서에서는 곧바로 식약처에 식품 이물 신고를 실시하고, 제조 단계에서는 결코 해당 크기의 이물이 혼입될 수 없음을 수차례 설명했다. 하지만 A씨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CEO와의 비공개 면담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인터넷 카페나 토론사이트, 방송사 뉴스, 증권 사이트 등에 이물 혼입 사실을 알려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주겠다는 협박이 뒤를 이었다. 그와 함께 '위로금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겠다면 연락달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수억원에 달하는 구체적인 보상금도 요구했다. 그러던 중, 식약처는 해당 이물이 제조 단계에서는 발생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조사를 종결했다. B사는 식약처 조사 결과 사실을 A씨에게 설명하며 소비자분쟁해결기중에 의거한 처리기준을 설명했고, A씨는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함께 마지막 전화를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

■가공식품 브랜드 C사

"블랙컨슈머와 그렇지 않은 단순 불만 고객과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클레임을 제기한 소비자가 '블랙컨슈머'로 추정될 때 제조공정상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이물 또는 벌레 등을 문제삼는 경우, 식약처 등 공인 기관에 조사를 의뢰할 것을 권유한다. 참고로 블랙컨슈머는 외부 공인기관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원하는 요구 사항을 확인했을 때, 과도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는 블랙컨슈머일 확률이 높다. 제품을 회수해 외부 기관에 조사를 의뢰하겠다는 제안 시 제품 회수에 응하지 않고 사진만 전달하는 경우 블랙컨슈머일 확률이 있다."

"2010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30대 초반 남성(대학 시간강사)이 "제품에서 벌레가 발견됐다"며 당사에 클레임을 제기했다. 제품 회수 후 외부 기관 조사를 제안했으나 거부하고 방송사와 식약청(현재 식약처)에 제보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확한 요구사항을 파악한 결과, 해당 소비자는 800만원의 금전적 보상과 일정수량의 제품을 요구했다. 그는 대응 과정에서 800만원→300만원→100만원까지 요구 금액을 낮췄다. 회사측은 소비자에게 "명확한 원인 분석에 응하지 않은 채 사회통념상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면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이후 회사측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언론 및 관계기관 제보를 빌미로 금전적 요구를 반복해 결국 회사는 법적대응을 하기로 결정했다. 외부 공인기관 조사 결과 이물(벌레)는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다. 이 내용에 대해 회사측은 해당 소비자를 고소헸다. 해당 블랙컨슈머는 결국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이 선고됐다."

■베이커리 브랜드 D사

"식품 이물 사고의 특성상 진위여부 파악이 힘들어 '블랙컨슈머'라고 명확한 규정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따라서 정량적 통계화도 어려운 상황이다. 1000~2000원짜리 제품을 먹고 배탈이 났다며 치료비, 정신적 피해보상, 일하지 못한 데 대한 일실소득 등 수백 만원의 보상금을 요구한 사례가 있다. 빵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며 '평생이용권'을 요구한 이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실제 제품을 다 먹어 진위여부 밝힐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먹고 남은 제품에 대해 미생물 수치를 분석한 결과 이상이 없었음에도 불구, 결과에 수긍하지 않고 온라인에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는 사례도 있다. 이물질 발생시 처리 절차와 해결의 투명성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라면브랜드 E사

"당사는 클레임처리시 보상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거한 처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1:1 교환, 환불을 안내해 처리하며, 도의적으로 자사제품의 선물세트 정도의 답례품을 보내 드리기도 한다. 현재까지 블랙컨슈머에 대한 피해사례는 없다. 하지만 당사 기업이미지 훼손, 언론·인터넷 유포 등을 앞세워 금전이나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은 지속적으로 있으며 무리한 보상에 대해 지급 불가함을 설명드리고 있다. 벌레나 이물 혼입에 대한 클레임건은 식약처 식품 이물보고를 진행한다. 법적 의무사항이기도 하지만 불신을 가지고 있는 고객으로 하여금 당사에 대한 신뢰를 주는 한편, 금전이나 무리한 보상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기도 한다. 클레임을 숨기기 위해 암묵적으로 고객과 금전으로 무마하려는 행위는 하지 않음을 고지힌다."

"소비자들이 블랙컨슈머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될 수 있도록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불만고객들도 블랙컨슈머는 나쁜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으면서 정작 본인은 블랙컨슈머화(化) 돼 간다. 실제로 교수라 밝힌 한 불만고객은 처리과정에서 생긴 직원의 응대를 꼬투리 잡아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보상'을 하라며 심한 욕설을 일삼았으며, 소비자는 ‘갑’이고 공급자는 ‘을’이 당연하니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다. 정부의 식품안전관리에 대한 노력과 정책도 중요하지만 똑똑한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로 포장되고 있는 블랙컨슈머화(무리한 요구)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변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커피전문점 F사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그로 인한 피해 규모를 공식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조금 부담스럽다. 고객 컴플레인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기업브랜드 이미지는 사실여부를 떠나서 실추된 후 다시 회복이 어렵다. 이 때문에 각종 게시판이나 온라인 상에 떠도는 이야기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성숙된 문화가 필요하다."

■분유 브랜드 G사

"분유 제품 특성상 블랙컨슈머라기보다는 실소비자인 엄마들이 워낙 깐깐하기 때문에 약간의 먼지나 제품 변형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맞다. 블랙컨슈머와 깐깐한 소비자를 구분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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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김치에 거미·파리·개미 넣고 하는 말이… [2014/08/04]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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