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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한덩어리…재기의 발판마련 수해응급복구 끝낸 보은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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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충북보은군회 북면 고석리-. 마을 앞을 흐르는 고석천 자갈밭에서 2백여명의 주민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마지막 남은 도로복구작업. 「우릉우릉」요란한「불도저」의 굉음이 골짜기를 울린다.
웃통을 벗어붙인 10대, 예비군 작업복차림의 청년, 구레나룻이 허연 노인네들까지 삽질에 바쁘다.
「불도저」가 밀어붙인 흙을 가마니에 담아 허물어진 도로의 노반을 쌓고 부녀자들은 삼태기에 자갈을 담아 길을 다진다.
2주째 계속된 강행군에 모두 손발이 부르텄지만 마무리 도로복구에 쉴틈이 없다.
수용된 이재민들 귀가
산모퉁이에서 자동차경적이 울리고 「시멘트」·목재 등 주택복구용 자재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2대가 주민들이 닦아놓은 1km의 마을진입로로 들어선다. 『자! 여러분, 어서 작업을 끝냅시다』부인과 3자녀 등 가족을 몽땅 잃은 이장 이상술씨(38)의 재촉에 잠시 일손을 멈췄던 주민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새로운 힘이 용솟음쳤다. 무너진 1km의 도로가운데 남은 30여m가 순식간에 제 모습을 찾았다. 6일 하오.「트럭」은 조심스레 새로 닦은 진입로를 따라 마을 안까지 들어섰다.
한마을주민 25명을 한꺼번에 잃은 참극을 잊기에는 너무나 상처가 깊지만 주민들은 땀의 보람에 환성을 울렸다. 「7·22수해」로 엄청난 피해를 본 충북보은군민들. 『오늘의 재난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군·관·민의 협력이 복구를 앞당겨 6일까지 응급복구는 일단 끝났다. 끊어졌던 도로·교량등 교용·통신망이 정상화됐다.
보은읍내 상가들도 대부분 새 단장으로 문을 열었다. 마지막까지 학교 등에 수용돼있던 4백55가구 2천43명의 이재민들도 5일 집으로 돌아갔다. 무너진 집 근처에 재해대책본부가 지급한 천막용 치고 주택신축 등 항구복구작업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마을의 75가구 중 69가구가 전파 또는 반파 되고 40정보의 농경지가 80%나 매몰됐던 내북면 봉조리 주민 3백여명은 횃불작업 6일만에 마을진입로 3km를 개통시킨 뒤 마을전체를 5백m쯤 떨어진 고지대로 옮기기로 하고 새동네 조성사업에 나서고있다.
연 8만8천 동원
폭우로 떠내려갔던 보은읍내 이평교(길이l백10m)에는 3백여명의 군인들이 중장비를 동원. 6일만에 길이 2백m의 우회도로를 건설, 청주∼보은국도를 소통시키고 다시 보청천 제방보수에 철야작업으로 땀흘리고 있다.
보은읍외속리면장재리주민들은 마을 위쪽의 장재저수지 둑을 보강하기에 밤잠을 설쳤다. 이장 박수갑씨(55)의 지휘아래 가마니에 흙을 넣어 수문 근처의 허물어진 둑을 쌓았다.
도로·하천·제방의 보수와 함께 침수됐던 농작물의 병충해방제도 큰일.
산외면봉계리구운서씨(26)는『남은 농토의 쌀 한톨이라도 건져야겠다』며 4시간 동안이나 침수 흙탕물에 뒤범벅이 된 4마지기 논에 5일 하루내 농약살포 작업을 했다.
내북면산성리 주민2백여명은 마을뒤 중동보를 복구, 1백정보논의 목타는 벼에 물을 댔다.
보은군의 피해는 사망1백7명(실종31명포암)에 부상l백l7명의 인명피해와 가옥전파 8백85채, 반파5백80채, 침수l천5백42채로 l만7천6백45명의 이재민을 냈었다.
또 3천2백90개소의 산사태로 농경지 4천5백90정보(전체농경지의 26%)가 매몰 유실됐으며 4천6백14정보의 농작물 피해를 보았다. 도로·교량 l백14개소, 제방·수리시설 1백52개소가 유실되고 전기·통신시설 3천7백7O개소가 파괴되는 등 모두 4백25억2천3백만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이같은 피해에 6일까지 연9백70여대의 중장비와 2천4백30명의 공무원, 5만4천7백여명의 학생·주민,1만5천여명의 민방위대원, 1만1천여명의 예비군,4천6백여명의 군인 등 모두 8만8천여명이 동원돼 응급복구를 마무리지었다.
가장 보람있는일 했다
재기의 현장에는 지역과 인종과 너와 내가 없다.
「우세화」라는 한국명을 가진 미평화봉사단원 「안드레아·우시아크」양(24)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수해이후 꼬박 군보건소에서 새우잠을 자며 주민들의 응급치료를 도왔다.
이 벽안의 아가씨는 『지금까지 가장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견해했다.
옥천여고학생 2백명은 방학중인데도 지난달27일 모두 등교, 4대의.「버스」를 타고 보은에 달려왔다. 읍내 전역에서 골목길 흙더미를 치우고 주부들의 빨래일손을 도왔다. 청주대학생 80명, 옥천고·청주농고·운호고 등 도내 각학교학생들도 다투어 복구지원반을 편성, 번갈아 노력봉사 했다.
청주시사직동주민 4O여명과 농협도지부직원 1백20명. 주식회사 대엄직원 1백명, 대한약사회원 50여명, 옥천군청소년연합회원 35명 등도 일요일을 틈내 수해지구에서 도로복구·침수양곡 말리기·투약·농약살포작업을 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응급복구보다 앞으로의 항구적인 복구작업이 더 큰과제.
보은군재해대책본부는 전파가옥에 동당1백만원 보조.3백만원 융자로 새집을 짓도록 할 계획이다.
수해염려가 없는 안전지대에 71개 집단 취락지를 조성해 l5∼25평형의 농촌주택 1천5백채를 지어 겨울이 닥치기 전에 모두 이주토록 할 예정이다.
또 반파 가옥엔 용자 1백50만원, 전세·월세가구엔 75만원씩의 보조금을 주어 생활주거를 마련토록 한다.
국고서 수리시설을
침수지의 농약·비료·대파종자값을 60∼1백% 보조하고 농경지복구비의 50∼70%를 국고에서 부담하며 10억여원으로 대대적인 취로사업을 벌여 이재민의 생계를 도울 계획.
특히 유실된 국도·하천·수리시설 등엔 전액 국고지원을 요청, 대규모 복구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기존의 주택자금 상환연기, 학자금·전기료·각종세금의 감면 등을 중앙에 건의하고있다.
주민들도 기왕의 수재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이같은 재난이 다시없게 근원적으로 수방대책이 마련돼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천재라고 하지만 허술했던 수방이 몰고 온 인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같은 일들에 정부당국의 「특별배려」가 아쉽다.
글 최근배기자
사진 김길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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