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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그들 뽑는 걸 당연히 생각하더니 아주 꼬소롬허구만, 맛 좀 봐야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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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민심을 다진 게 승리의 요소였다.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선거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고향인 곡성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곡성=프리랜서 오종찬

“(새정치민주연합은) 똥만 싸고 날아가 버리는 비둘기라, 우릴 물로 봤어. 당해도 싸.”(용당동 주민 조원성)

“아주 꼬소롬허구만, 즈그들 뽑아주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맛 좀 봐야제.”(자영업자 이호)

7·30 재·보궐 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의 투표 결과는 뜻밖이었다.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에 대한 바닥 민심이 흉흉해도,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예산 폭탄” 운운해도 어디까지나 호남, 그것도 전남 아니었나. 내 편(새정치연합) 밉다고 상대방(새누리당) 밀어주는 ‘배반 투표’를 호남 유권자만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야당은 의심하지 않았다. 또 이 후보가 비록 선전했지만 결국 지역주의의 두꺼운 벽을 실감하리라고 대다수 전문가는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 후보의 9%포인트 차 완승.

이로써 망국적 지역주의는 사라진 것일까. ‘호남=피해자’라는 의식은 없어진 것일까. 중앙SUNDAY는 선거 이튿날 순천·곡성으로 가 2일까지 사흘간 머물며 주민 100명을 인터뷰했다. 질문의 핵심은 “호남에 기반을 둔 새정치연합을 왜 외면했는지” 그리고 “이정현을 찍는 게 결국 새누리당을 도와주는 꼴인데 괜찮은지”였다.

“누가 새정치연합을 호남당이라고 합디까.” 첫 답변부터 질문을 비켜갔다. 택시기사 김모(52)씨는 “안철수가 광주 사람인가, 부산이재. 김한길도 그라고. 그짝(새정치연합)에 전라도 사람 별로 보이지도 않더만”이라고 했다. 중앙시장에서 만난 노점상 윤모(62)씨는 “선거 때만 전라도 이용해 묵지, 김대중 슨상님 돌아가시고는 많이 거시기해져 부렀지”라고 했다.

당에 대한 실망만큼 서갑원 후보에 대한 불만도 컸다. 조례동 주민 서모(38)씨는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가고 비리 저질러 감옥 갔다 온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 또 내리꽂는 거 보면 (새정치연합) 콩가루인 거죠”라고 했다. 연향동 주민 정순희(42)씨는 “서갑원, 의리가 없어요. 우리 아파트가 사기로 경매 넘어가, 몇 번 찾아갔는데 별 시덥잖게 생각해불더만”이라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경준(29)씨는 “몇 년 전 순천대 공대를 이전하기로 했는데 당시 서갑원 국회의원이 반대해 좌절했다. 순천대생 대부분이 서갑원을 싫어한다”고 전했다. “서갑원 될까봐 이정현 찍자는 분위기가 있었다”(연향동 주민 구대서)고도 했다.

아예 “이번이 유별난 게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새정치연합 안 좋아했다”는 지역민도 다수였다. 해룡면의 한 주민은 “새정치연합 깃발 꽂으면 무조건 되는 게 아닌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순천시장은 무소속 후보가 연이어 당선됐고 지역 국회의원 역시 진보정당 후보가 연거푸 차지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순천-곡성에서의 새정치연합 지배력은 이미 상당히 상실됐으며 제3 세력 출현에 대한 지역민의 갈망이 컸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은 많이 줄어든 것일까. 이 대목에선 꽤 복잡한 심경이 드러났다. 연향동 주부 박정은(42)씨는 “새누리당을 찍는 게 괜스레 배신하는 거 같아 죄책감이 들긴 했다”고 털어놨다. 김창욱(52)씨는 “박근혜 보고는 못 찍지. 솔직히 이중적이긴 했다”고 전했다. 조례동 주민 강광철(41)씨 역시 “여전히 새정치연합을 지지한다. 이번엔 심판하는 마음이었다. 살 길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은 높았다. 생목동의 한 주민은 “번듯한 병원 하나 없다. 순천의 소외감을 딴 사람들은 모른다”고 했다. 곡성읍에 사는 송하정(58)씨는 “여기선 40대가 젊은이다. 일자리가 더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투표 결과를 지역주의 해소로 읽어도 되는 걸까. 곡성군 겸면의 심모(75) 할머니가 답을 줬다. “지역감정은 무신…. 누가 지역주의 부추겼는디, 그냥 전라도 왕따였지. 그거 분해서 새누리당 안 찍은 거였어. 근디 언작까지 그러고 살아야 하나 싶더라고. 아무리 억울해도 당한 우리가 마음을 풀어야 하지 않 겄어. 그거 저 윗사람들이 알른가 모르겄어.”

최민우 기자 순천·곡성=박종화·황은하 인턴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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