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 놔가며 구타, 살인죄 처벌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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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폭행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졌던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윤모(23) 일병의 죽음이 선임병들의 잔인하고 지속적인 가혹 행위에 따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분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파문이 커지자 육군은 추가 기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용한 육군 공보과장은 1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들이 윤 일병의 멍든 부분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면서 성기에는 윤 일병 스스로 바르도록 했다”고 밝혔다. 최 과장은 “강제추행 여부를 좀 더 판단해보고 추가 기소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가해자인 이모(26) 병장 등 4명을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없어 살인죄 적용은 어렵지만 법정 최고형을 구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터넷과 SNS 등에서는 “가해자들의 폭행 정도를 보면 윤 일병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는 등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윤 일병 사건의 진상을 폭로했던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도 “육군의 발표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윤 일병은 지난 2월 육군 28사단 의무병으로 배치받았다. 그는 배치 후 이 병장 등 선임병 4명으로부터 매일같이 구타를 당했다. 이 병장 등은 “대답이 느리다”며 마대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윤 일병을 때렸다. 의무병인 이 병장 등은 연이은 폭행으로 윤 일병이 힘들어하면 링거 수액을 주사했다. 윤 일병이 기운을 차리면 폭행을 계속했다. 윤 일병이 사망한 4월 6일에는 전날 밤부터 구타가 이어졌다. 5일 오후 9시45분 무렵 이 병장은 윤 일병을 4시간 넘게 폭행했다.

이 병장 등은 이튿날 오전 윤 일병이 매를 맞다 쓰러지자 맥박과 산소포화도 등을 확인하고 이상이 없자 “꾀병을 부린다”며 폭행을 계속했다. 오전 10시쯤 이 병장은 침대 아래쪽에 가래침을 두 차례 뱉으면서 이를 윤 일병에게 핥아먹게 했다. 오후 3시30분에는 냉동식품을 함께 먹다 ‘쩝쩝거린다’는 이유로 윤 일병의 가슴과 턱·뺨을 때렸다. 음식물이 튀어나오자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핥아먹게 했다. 이후 이들은 윤 일병의 정수리 부분과 배 부위를 때리고 엎드려 뻗쳐를 시킨 상태에서 폭행을 이어갔다. 오줌을 지리며 쓰러진 윤 일병은 결국 4월 7일 사망했다.

한편 윤 일병 구타에 가담했던 이모(20) 일병이 지난해 12월 물고문과 치약 먹이기 등 가혹 행위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 검찰단은 “당초 윤 일병이 물고문과 치약을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사 결과 가혹 행위를 당한 건 숨진 윤 일병의 선임인 이 일병”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육군은 권오성 참모총장 명의로 ‘구타·가혹행위 및 언어폭력 발본색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일반명령을 하달했다.

정용수.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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