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정교사도 구직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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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사는 A부인은 지난 5월 S고교 2년생인 장남의 중간 고사 성적 통지표를 받아보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의 성적이 위험 수위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초 과목인 영어와 수학이 크게 뒤져 있었고 전체 성적도 반에서 중간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동안 안방 과외다, 「그룹」 과외다 해서 요란스러웠을 때도 『우리 형편에 무슨 과외냐』하고 외면해오던 A부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지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대학생 가정교사를 붙이기로 했다. 아쉽긴 하지만 「적은 부담」으로 「과외 효과」를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S대 대학원 재학중인 K씨로 하여금 1주 2회씩 영어를 가르치도록 했다. 우선 아이가 영어에 취미를 붙여 안도의 숨을 돌리고 있지만 모자란 수학도 시켜야 하고 기타 과목도 보충해야 하니 걱정은 여전히 남는다.
가정교사 월급으로 한달 생활비의 15%에 가까운 7만원을 지불하고 있고 그밖에 학원 단과 반에 보내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으니 생활비도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A부인은 비슷한 아이들끼리「그룹」을 만들어 다소나마 비용을 적게 들여볼까 하지만,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 방영되기 시작한 TV 과외 방송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가정교사가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어쩌면 여러 과외 형태 가운데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생의 가장 무난한 「아르바이트」로 꼽혀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정교사의「스타일」도 종래의 그것에서 크게 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종래 입주위주에서 시간제위주로의 변화. 서울대학교 직업보도소 담당자 권석기씨에 따르면 7대3의 비율로 시간제가 단연 우세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의「아르바이트」직종이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대종은 역시 가정교사입니다.
가장 손쉽고 대우도 좋으니까요. 저희가 소개하는 부직의 98% 이상이 가정교사입니다. 일정시간만 마치면 부담 없이 자기공부를 할 수 있고 남의 집 눈치 밥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 요즘에는 시간제 쪽을 더 원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학부모 쪽에서도 집안에「새 식구」를 받아들이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시간제를 원하는 집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입주의 경우는 대부분이 지방 학생의 경우. 비싼 하숙비 부담을 덜어보려는 것이다. 간혹 학부모 측에서 입주를 고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단순히 학과 공부뿐 아니라 학생의 생활 지도를 더 요구하는 때문.
보수는 시간제의 경우 대개 1주 3회 기준 영·수 두 과목에 8만원 선이 평균이고 3∼5명의「그룹」일 경우엔 10만원을 넘는데 대신 학생 1인당 부담은 줄어든다.
권씨의 10년 경험에 의하면 요즘 학생들은 과거의 학생들처럼 「아르바이트」에만 전적으로 매달리는 학생은 없는 것 같고 1, 2학년 때 조금하다가 고학년에 가면 전공 공부 시간을 뺏긴다하여 삼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씨의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공부보다 「아르바이트」가 주업처럼 된 학생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Y대 경영과 강모군과 물리학과의 박모군은 가정교사 「그룹」전문「팀」. 이들은 지난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 영·수를 서로 분담하는 형식으로 고교생 세「그룹」을 맡아 각자 매월 30만원씩 수입을 올렸다.
이들은 그동안 책대와 용돈을 제하고 저축한돈 가운데서 일부는 2학기 등록금에 보태고 나머지로는 올 여름 동해안 일주 계획에 쓸 예정이다.
대학생들이 가정교사 자리를 얻는 방법은 유형상으로 크게 두가지. 친지를 통한 안면 아니면 학교 직업보도소 또는 신문광고를 통한다. 서울 출신 학생이 안면을 통하는 편이 많은 반면 지방출신은 단연 신문광고 또는 직업보도 쪽.
고대학생처 장학담당 김영철씨는 『학교가 문을 닫고 있는 상태에서 요즘 현상을 과거의 예와 비교할 수는 없겠읍니다만 최근 들어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의 부업 알선 건수가 크게 줄고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학교의 경우 요즘 매일 10건 내외 신청 접수에 성사는 2∼3건 정도인데, 이는 학기초에 비해 3분의 1 정도입니다. 아마도 최근의 불황, 그리고 TV과외 등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거겠죠』라고 전한다.
가정교사의 특성 가운데 또 하나는 학생들의 전공 학과와 큰 관계가 있다는 것. 고대의 경우 최근 모 사설학원에서 물리교사의 결원이 생겼으니 물리학과 학생 하나 급히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이공계가 문과계보다 인기가 높은 편. 이 같은 현상은 수학과목 때문으로 풀이되는데 여기에 일류 대학이 아니면 안 된다. H대 영문과 K군은 최근 신문에 3차례나 가정교사광고를 냈지만 장난 전화 몇통을 받았을 뿐이라고. 특히 인기 있는 것은 예능계. 음·미대생의 경우 일반 학생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TV과외가 생긴 후부터 입시 전문 지도의 학원가, 「그룹」 과외 등이 이미 타격을 받고 있는 터에 대학생 「아르바이트」 가정교사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은 전반적인 영향을 받고있는 것은 아닌 듯.
종로구 혜화동 O여사는 대입을 준비하는 딸을 위해 대학생 시간제 가정교사를 두고 있는데 최근의 TV과외의 결과에 자못 기대가 크다면서『과외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있다고 봅니다. 학교 교육이 부실하니까 과외가 성하는 것 아니겠어. TV과외도 좋고 단속도 좋지만 학교 교육의 정상화만이 근본적인 대책일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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