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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성 짙어진 시 … 삶의 사소함 응시한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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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달 17일 미당문학상 예심 장면. 왼쪽부터 평론가 고봉준, 시인 조용미·장석남, 평론가 조재룡·강동호씨. [강정현 기자]

최근 1년간 발표된 시와 단편소설 가운데 최고의 한 편씩을 가려 뽑는 미당(未堂)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이 각각 10명씩의 본심 진출자를 확정했다. 감식안 빼어난 시인·평론가들로 구성된 5명씩의 미당·황순원문학상 예심위원들이 지난 5월부터 국내 주요 문예지에 실린 작품들을 빠짐 없이 검토한 결과다.

 가슴을 후벼파는 한 편의 시를 뽑는 미당 본심에는 김이듬·김행숙·나희덕·손택수·이문재·이수명·이원·이제니·이준규·최정례 10명이 올랐다. 시인 한 사람당 지난 한 해 동안 적게는 10편, 많게는 33편의 시를 발표해 전체 195편이 심사 대상이다.

 인간 세상의 모순과 역설, 현재와 미래를 담는 그릇인 단편소설에게 주는 황순원문학상 본심에는 기준영의 ‘이상한 정열’, 백민석의 ‘수림’, 윤이형의 ‘루카’, 은희경의 ‘금성녀’,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전경린의 ‘맥도날드 멜랑코리아’, 전성태의 ‘성묘’, 정이현의 ‘영영, 여름’, 천운영의 ‘다른 얼굴’, 황정은의 ‘누가’ 10편이 올랐다. 독자에게 친숙한 얼굴, 참신한 ‘젊은 피’ 등이 골고루 포진한 모양새다.

 활동이 두드러진 시인·소설가의 작품들을 저인망식으로 훑기 때문에 미당·황순원 본심 진출작들은 한국문학이 최근 1년간 거둔 소출의 전모에 해당한다. 요즘 작품 경향, 트렌드의 변화까지 엿볼 수 있다. 작품이 결국 세상의 반영이라고 할 때 본심 진출작들은 한국사회의 다른 얼굴이다.

 8월 한 달간 본지 문화부 기자들이 작가의 설명을 바탕으로 작성하는 본심 진출작 릴레이 소개 기사는 한여름 서늘한 우물물과 같은 상큼한 대리독서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미당·황순원문학상은 올해로 14회째다.

지난달 22일 황순원문학상 예심 장면. 왼쪽부터 평론가 이경재·백지은·권희철·조연정·강경석씨. [장련성 인턴기자]

 ◆자기 체험 녹여내=본심 진출작들이 그리는 한국시의 풍경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평론가 고봉준씨는 “이른바 ‘미래파’로 불리는 일군의 시인들의 실험적인 성격이 차츰 약화되고 있는 것이 최근 4∼5년 새 한국시의 변화”라고 지적했다. “대신 진정성을 바탕으로 자기 체험을 녹여내는 서정시 계열은 실험적 요소를 가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실험시와 서정시의 대립이 과거처럼 선명하지 않고, 각각 서로의 특징을 받아들인 중간 경향이 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시인 조용미씨는 “시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 암중모색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시인들이 눈에 띈다”고 평했다. 강력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난해한 시를 쓰던 시인들이 각자 일정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게 됨에 따라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얘기다.

 나희덕·이문재 등은 자신들의 이전 시쓰기와 달리 각각 우울이나 애도, 사회적인 이슈 등을 건드리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마음의 풍경에 주목=본심에 오른 10편의 빛깔이 모두 제각각이라고 할 정도로 다채롭다. 평론가 권희철씨는 “그런 가운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의 풍경에 주목한 소설들이 두드러진다”고 평했다. 은희경의 작품 ‘금성녀’가 대표적이다. 청년이 보는 노년의 죽음, 우아하게 늙는 법 등에 대한 묘사를 통해 결국 작가가 들여다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세월호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소설로 형상화될 경우 빈번하게 등장할 가능성이 큰 주제다.

 평론가 조연정씨는 “인간의 삶이나 죽음 등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정치나 윤리 차원의 거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사소하면서도 구체적인 얘기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가령 남북 분단의 국경을 넘는 이야기를 할 때 개인들의 만남에서 오는 균열, 언어의 문제 등을 건드리는 식이라는 지적이다.

 평론가 이경재씨는 “사회적 현실을 다룰 때도 구조적인 문제보다 사람들이 관계 맺는 양상에 더 주목하는 ‘정념의 미메시스(모방)’라고 할 만한 특징이 보인다”고 평했다.

글= 신준봉·김효은 기자
사진=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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