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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9> 평양총지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군은 l950년 10월10일 원산을 탈환하고, 이어서 10월19일에는 평양을 탈환했다. 한국은행도 북한지역에 대한 통화대책및 지점개설에 필요한 정보수집을 서둘렀다. 당시 목포지점장으로 있던 이상윤(전경기은행장)을 불러올려 원산으로 파견했다. 이지점장은 8ㆍ15해방 직전까지 조선은행 원산지점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리지점장은 원산에 가서 그쪽 중앙은행 원산지점에서 근무하던 지점장대리를 데리고 왔다. 공산집단을 따라가지 않고 원산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국은행이 지점을 개설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며 자기가 책임지고 일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해주는 38선이 가까왔으므로 비교적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 가능한한 정보를 수집 분석한 결과 평양에 북한 전지역을 통할하는 총지점을 설치하고 원산과 해주에 각각 지점을 개설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11월2일 금융통화 위원의는 박숙희ㆍ이상윤ㆍ김명수를 북한파유원으로 임명했다.
박숙희는 평양 총지점장으로 임명하기 위하여, 김명수는 8ㆍ15해방 직전까지 해주지점에근무했던 인연으로 상공은행에서 복귀시켰던 것이다. 이들 북한방면 세 지점장들은 당시 한국은행 본부건물로 썼던 제일은행 강당에 본부를 설치하고 지점 개설준비에 동분서주했다. 한국은행 본관 건물이 소실된 뒤 끝이었던 만큼 집기ㆍ비품ㆍ문방구의 재고가 있을리 없고, 따라서 책장에서 부터 「펜」촉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새로 장만했다. 평양ㆍ원산ㆍ해주, 그리고 지점장은 임명 안되었지만 함경점분까지 지점인ㆍ지점장인을 비롯하여 필요한 모든 중요인장을 조제했다.
개점을 앞두고 나와 박총지점장이 현지답사를 위하여 평양으로 떠난 것은 10월5일께였다. 일행은 우리 두 사람외에 육군경리감 원대령과 안모-이 사람은 평양에 가족을 두고 월남한 사람으로 꼭 평양에 가야되겠다고 간청을 해 동행하게 되었다. 군용기로 김포비행장을 출발, 방하늘을 일로 평양으로 향했다. 당시 북한땅 산속에는 패잔공산군이 집결해 있었는데 이들이 우리 비행기를 향해 쏘아 올리는 총탄이 밤하늘에 반딧불처럼 튀어올랐다. 군데군데 산속에서 튀어오르는 이불을 볼때마다 움찔움찔하며 약1시간만에 평양비행장에 도착했다. 미군 「트럭」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데 어제 이 곳에서 습격을 당해 육군소령이 1명 희생 당했다며 머리를 숙이라고 해서 숨을 죽이고 엎드렸다. 칠흑같은 밤거리 요소, 요소에 서있는 보초병의 눈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전쟁의 흔적이 채가시지 않은 평양거리였다.
안씨는 우리 일행을 자기집으로 안내했다. 군에서 숙소를 알선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불안한마음에 염치 불구하고 안씨 집사람채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옛날의 조선은행 평양지점건물은 폭격을 당해 파괴되었지만 다른 은행들의 점포는 안전했고 금고도 건재하여 개업을 하자면 언제든지 문을 열수 있는 상태였다. 중앙은행은 옛날 조선식산은행 평양지점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건물을 지키고 있던 미군대위의 양해를 얻고 은행안을 두루 살펴보았다. 금고에는 그들이 불을 지르고 도망쳤기 때문에 재만 남아있었다. 새로 평양시장이 된 우제순씨로부터 은행권이 부족하여 시청직원들의 급료를 못줄 지경이라는 말을 들은 터라 어디엔가 남아있는 은행권이 없을까 하고 찾던중 서고에서 손권을 발견했다. 어느정도 가려내면 쓸만한 지폐였다. 나는 손대중으로 대강 어림잡아 금액을 부르고 박총지점장은 주판을 놓았다. 재고은행권 조사에 열중하고 있는데 별안간 고함치는 소리와 함께 귄총을 들이 대는것이 아닌가. 깜짝놀라 돌아보니 미군 대령이었다. 전방지휘사령부의 책임자라고 했다. 너희들은 누구의 허가를 받고 여기 와서 돈을 만지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은행에서 왔다고 해도 한국은행이고 무엇이고 알바 아니라고 끌고갈 기세였다. 나는 실명을 하고, 그동안에 박총지점장은 견본용으로 주머니에 넣었던 지폐를 슬금슬금 꺼내 바닥에 버렸다. 우리는 결국 도청으로 연행되는 꼴이 되어 도청에서 미8군 민정장관 「Rㆍ먼스키」대령의 한국인 보좌관으로 있던 이찬형대령(작고)을 만났다. 이대령은 이태형(전한국은행 감독원장)의 동생이었고, 그의 안내로 「먼스키」대령을 만났다. 「먼스키」대령과는 그가 해방후 미군정시대에 서울시청에 있었던 관계로 나도 안면이 있었다. 「먼스키」대령이 우리신원을 보장해 주어서 겨우 전방지휘사령부의 미군대령으로부터 풀려났다.「먼스키」대령에게 은행권이 부족하여 큰 곤란을 겪는 모양이니 앞으로 한은권을 사용하도록 제안했지만, 그는 권한이 없다면서 서울에 가서 의논하자는 바람에 은행권 문제는 흐지부지 끝나버렸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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