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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요직」과 「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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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수립 직후 관리들의 선망의 대상은 재무부 관재국이었다. 일본사람들이 남기고 간 주택·건물·공장 등 막대한 「귀속재산」의 처분권을 이 기관이 쥐고 있었다.
「6·25」동란으로 미국의 원조물자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원조물자, 특히 소맥 등 식량의 배정권을 쥔 농림부 수정과가 공무원사회에서 인기를 모았고 60년대에 들어와 외자도입에 의한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면서는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의 공공차관과·민간차관과 등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정책 따라 인기 변해>
70년대에 들어서 국토개발계획과 공업단지조성·도시정비작업이 활발하면서 건설부의 산업입지국, 서울시의 도시계획국이 부강했고 고속도로개통으로 고속 「버스」의 인허가권·노선배정권을 쥔 교통부 육운국도 한때 A급으로 꼽혔다.
각광을 받는 자리가 꼭 직급이 높은 데만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세청의 계장급 실무자나 세무서 주사들 중에는 진급을 기피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경제기획원 과장급이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길 때는 대개 1개급 승진되어 국장급으로 가게 마련인데 국세청 같은 데는 동일직급으로 자리를 옮기기조차 힘든다. 인기가 있는 직책일수록 배타성이 강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한때 내무부 치안국장, 재무부 예산국장, 경제기획원 예산국장을 3대 국장으로 꼽은 일이 있다. 치안국장은 부하가 가장 많은 국장이다. 현재의 치안본부장 전신인 이 자리는 전국 4, 5만명의 경찰총수로서 지휘관적 성격을 지닌다. 예산국장은 은행을 관장하고 예산국장은 나라살림을 요리한다.
지금은 직제도 다소 바뀌었고 여건도 많이 달라져 5만 경찰의 인사권을 쥔 치안본부장은 차관급이 됐고 예산실장은 1급으로 승격됐으나 예산국장은 아직 그대로다. 재무부에 재정차관보를 두고있기 때문에 승격시킬 필요가 없다. 공무원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기직이라하면 최소한 두 가지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첫째 기준은 권한이 많아야 하고 다음으로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여야 한다. 권한이 많으면 거기에는 따라다니는 것도 자연 많다고 생각들을 한다.
각 부처의 총무과장은 다음번 승진의 대기소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하급직권의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 좋은 자리로 꼽힌다. 각종 인허가와 검사업무를 맡은 민원부서는 승진측면보다는 권한행사 쪽이 강조되는 자리다.
시청 보건위생국이나 구청 세무과 등은 일반적으로 희망자가 많은 곳이며 업체에 대한 투자조정·자금배정권을 쥐고있는 상공부기계공업국·섬유국이나 제품의 가격조정을 맡은 각 부처 주무과, 경제기획원 물가관리실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이에 비해 각 부처의 기획업무담당부서·비상계획관·대변인 등 민원업무와는 관계가 먼 곳을 「한직」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는 인기직을 따려고 실력자와 줄이 닿는 인맥을 동원하거나 더러 금품공세가 발각돼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심한 경우는 경쟁상대에 대한 중상모략까지 나왔다.
또 일단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 함을 쓴다. 어떤 부서에서는 상사에게 상납한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고 고위층과 관계를 맺은 후 이를 과시해서 호신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강직하기로 소문난 어떤 도백이 어느 청장발령을 받으니까 요직에 있던 간부와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다같이 몰려왔는데 신임청장이 두 쪽을 모두 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어느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는 것은 상사의 의향에 달려있다. 대개는 좋은 자리에 임명권자가 측근을 배치한다. 또 처음엔 심복이 아니었다가도 자리를 지키려면 자연 측근이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장관이 바뀌면 요직국·과장에 대한 인사가 필수적인 행사로 따랐다.

<인사교류 활발해야>
공무원사회에서 요직과 한직관념을 없애려면 인사교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동안에는 부처간이동이 극히 미미했다. 지난해 조사한 공무원 「센서스」에 의하면 국가공무원의 경우 90·7%, 지방공무원 중에는 93·6%가 같은 부처에만 근무한다. 이러한 교류정체를 해결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다.

<부처간 이동 9%선>
꽤 오래된 얘기지만 모기관에서 국세청 관계직원의 비위를 본격적으로 내사, 고위층에 처벌을 상신한 일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국세청장이 직접고위층을 만나 『세무직원을 건드리면 세금 징수가 안돼 세수에 큰 차질이 온다』고 협박(?)해서 결국 흐지부지된 일이 있다.
이제까지 공무원 사회의부조리와 자리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부조리척결에는 인사쇄신이 따라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공무원이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있다.
자리가 문제되지 않는 공직자사회의 풍토가 절실한 과제라고 하겠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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