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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금 조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전에서 한국은행은 군자금부족으로 전쟁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며 발권대책에 혼신의 힘을 경주했다.
다행히 6월27일, 서울을 떠날때 욱해공 3군에 긴급지출한 약 10억원의 군자금이 있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해군의 우은태경리참모는 약 3억원을 진해로 현송하여 해군 전투자금에 충당했다.
국방부 제3국장 김일환대령은 약5억원을 대전으로 가지고 내려와 이를 대전지점 금고에 다시 맡겨놓고 필요할때마다 꺼내다 썼다. 이 군자금으로 당장 필요한 자금은 꾸려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에 끝날 전쟁이 아니었다. 미발행은행권 총보유량 40억원으로 동경에서 새은행권이 도착할때까지 버텨나가기위해 일반자금의 지급을 극도로 억제하며 군자금제일주의를 밀고 나갔다.
심지어는 일반 봉급자금조차도 지급을 억제하도록 각 지점에 엄명했다. 그래서 혹은 소동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귀를 막고 군자금 제일주의를 강행했다.
대전지점은 1944년5월에 개설된 지점으로 그때까지 건물도 짓지 못하고 조그마한 건물을 빌어 쓰고 있는 처지였으므로 금고시설이 아주 빈약했다. 따라서 그 지점의 은행권보유량만 가지고는 갑자기 늘어난 자금수요를 도저히 감당할수 없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전주지점으로부터 은행권을 현송해 가지고 자금수요를 충당했다. 6월30일 제1차로 2∼3억원을 가져왔는데 전주지점에서도 그 지방 군경의 소요자금을 대야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자금공급이 어렵게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머리를 짜낸 묘안이 「남출급어음」을 발행하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오늘날 흔히 이용되고있는 「자기앞수표」같은 것인데 국고수표용지에 한국은행 총재의 도장을 찍어가지고 1만원짜리 무기한 정액수표를 만들어 은행권 대신 유통을 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도 대전지점이 가지고있는 수표용지만으로는 부족하여 전주지점에서 용지들 가져오고 대전지점의 여자행원들을 동원하여 작업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새 은행권의 도착이 빨랐기 때문에 이 수표는 실제로 발행하지 않고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한편 서울을 비롯한 적침지역의 은행권문제도 방치할 수없었다. 당시 조선은행권은 서울 원효로에 있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했는데 은행권 인쇄용 원판과 인쇄시설이 적침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를 처치하지 않으면 공산당이 은행권을 날조, 남발할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신성모국방장관과 의논하여 「딘」소장에게 요청한 결과 7윌21일 미공군이 서적회사를 폭격, 인쇄시설을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은행권 인쇄를 봉쇄했던것이다.
또 한가지 대전에서 있었던 일로 생각나는 것은 부산부두에 쌓여있던 수출물자를 부랴부랴 일본으로 수송한 사건이다. 한국전에 출전하는 UN군장병과 군수물자가 속속 부산항에 입항하는데 부두에는 흑연·골석·형석등 각종 광석을 비롯한 수출물자가 산적해 있었다. 특히 부두에 야적된 광석류는 주로 대일수츨품으로 일본측이 수입을 꺼리고 미룬 까닭에 어떤 것은 몇해씩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UN군측은 군수물자를 부리기 위해서 빨리 이 물자를 치우지 않으면 바다에 던져버리겠다고 했다. 부득불 체화를 치워 부두를 비워놓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 되었는데 최선의 방법은 이를 다른곳으로 옮기느니 아예 일본으로 수출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출물자 사무취급을 위하여 부산으로 파견한다는 육해공군 총사령관겸 계엄사령관 정일권소장의 증명서를 휴대하고 7윌11일 김영찬외국부장(전산은총재)이 대전에서 부산으로 향발했던 것이다.
김부장은 부산도착 즉시 동경지점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동경지점은 김용주공사와 협의, SCAP의 협조를 얻어 일본정부와 교섭한 결과 부산부두의 체화를 일소하기위해 한국에서 발송하는 물자는 무조건 수입허가서를 발급하며 대금은 1950년6월8일 발효한 「한일통상협정」에 따라 개설된 「청산계정」을 통하여 결제키로 합의를 보았다.
수송선박은 대한해운공사의 적극협력으로 수척의 수송선을 확보했다.
하역 자금 기타 비용도 한국은행이 융통했다. 물건주인인 무역업자는 피난민이니 자금이 있을리 없고, 시중은행들도 예금고갈로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역자금에서부터 수송, 물자의 처분, 대금결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한국은행이 부두의 체화를 청소함으로써 군수물자 하역의 원활을 기했는데 이때 김부장을 도와 외국부 사무를 본 직원은 이창근대리(현 한국개발「리스」사장)과 장예준행원(전 상공장관·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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