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 기업 여건과 기술 혁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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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70년대 후반기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심각한 좌절과 한계를 맛보았던 시대였다. 세계 각국은 발전의 욕구가 강렬할수록 그만큼 큰 실망과 위기감을 안게 되었다.
먼 앞날의 일로만 여겼던 자원의 한계가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현실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위기의 시대를 맞아 이를 극복해야할 지혜조차 한계에 이른 느낌이다. 선진공업국들은 오랜 기간 성장의 활력을 찾지 못한 채 고열의 「인플레」에 지쳐있고 개도국·후진국들은 또 그 나름으로 발전의 지향을 상실한 채 전략의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열쇠를 기술 혁신에서 구하자는 새로운 제안들이 학자들 사이에 다시 제기되고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도 일면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 성장이 사회 발전에 불가결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보장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성장 자체가 우리처럼 노동·자본 투입의 지속적 증대로 얻어질 경우 조만간 잠재력의 한계에 직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차 계획이 해결해야할 가장 큰 난관이 바로 이점이다.
괴리되어온 성장과 발전을 연결 지우고 한계에 부닥친 잠재력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5차 계획의 방향과 운영을 보다 균형과 발전 지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과학 기술의 개발과 혁신은 그것을 촉진하고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기술 혁신의 필요성에 비해 우리의 인식과 노력은 너무 미흡하다. 질과 양 어느 면에서도 과학·기술의 현실은 후진적이다. 그나마 축적된 기술조차 산업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같은 후진성을 명료하게 분석해낸 바 있다. 양적으로는 물론 연구 개발 투자의 저위가 두드러진다. GNP의 겨우 0·67%에 불과하고 과학 기술 예산도 총예산의2·1%라는 낮은 수준을 맴돌고 있다. 우리보다 잠재력이 월등히 높은 선진국들조차 GNP의 2∼3%를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예산의 6%까지 배정하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런 양의 측면보다 질과 환경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동 연구원이 지적한대로 그동안의 개발 정책이 과도하고 불합리한 보호와 특혜를 지속함으로써 빚어진 편중된 산업 정책이 과학 기술 개발을 원천적으로 저해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혜적 금융,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과 이로 인한 독과점·부실 기업 보호 등이 경쟁 체계의 구축을 저해하고 결국 창의적인 기술 혁신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 기술 개발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 투자라는 성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보다 기업의 창의와 신기축을 자극할 수 있는 경쟁적인 산업 환경의 조성이 1차적인 관심사가 되어야한다. 이는 산업 정책의 과제이기도 하다.
기술의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개발을 지속하려면 연차적인 기술 개발 계획과 집중 투자가 불가피하나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적절히 분업과 협동을 조화시키면 비교적 단기간에도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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