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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인해전술 상담으로 관심병사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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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시프트(Shift·장소이동)’는 프로야구에서 자주 나오는 수비전략이다. 특정 방향에 타구가 올 것을 예상하고 수비진을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시프트를 당하는 타자의 타율은 평균 3∼4푼가량 떨어진다고 한다. 시프트가 가능한 것은 다양한 통계 자료 덕분이다. 타자의 성향이나 타법 등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입체적인 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프트가 생각난 것은 몇 달 전 군 당국에 병영 내 자살 관련 통계를 요청했을 때였다. 군이 보내준 자료에는 최근 10년간 군에서 자살한 병사의 숫자(774명)만 적혀 있었다. 해당 병사들의 근무 지역, 계급, 연령 같은 자세한 통계를 요구했더니 “DB(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자살이 병영 내 사망 원인 1위인데 군 당국의 인식은 이렇게 안이했다.

 군은 GOP 에 20여 명의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총기 난사 사건 후 내놓은 첫 대책이었다. 병무청도 27일 ‘관심병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징병검사에 정신과 전문의 10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문이 앞섰다. 상담관을 늘리고 정신과 전문의를 늘리면 관심병사와 총기사고가 줄어들까. 현장의 분위기는 냉담했다. “글쎄요. 업무 강도를 줄여 스트레스를 낮춰야 할 텐데요.” “임 병장이 상담을 못 받아서 총질을 했을까요?”

 일선의 중·하급 장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부에 ‘뭔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인력 증원”이라 자조했다. 우려대로 27일, 다시 2명의 관심병사가 목을 매 자살했다. 그중 한 명은 총기 난사가 일어나 각종 관리 대책이 쏟아진 22사단 소속이었다.

 ‘군진간호연구’ 2012년 9월호에 게재된 국군간호사관학교 이진이 대위와 서울대 성인간호학 박연환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GOP나 GP(Guard Post·전초) 병사들이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개인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2.78점)였다. ‘업무가 지루하고 변화가 없다’(2.64점)가 다음이었다. 22사단 GOP 총기 난사사건 현장에서 만난 장교들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 때마다 군에서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과연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상황을 개선시키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매번 해당 지휘관을 문책하고, 외출·외박을 금지하는 땜질 처방뿐이다.

 군은 65만 명의 대집단이다. 창군한 지 76년이다. 30년 역사에 500여 명의 선수가 활동하는 프로야구도 다양한 통계를 분석해 ‘시프트’를 하고 있다. 이제 군도 관심병사나 총기사고 등에 대비하는 ‘시프트’를 만들어볼 때가 됐다.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