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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다리 타기'까지 하며 국민 혈세 축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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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28개 건설사에 과징금 4355억원을 물렸다. 역대 건설업계 담합 과징금 중 가장 많은 액수다. 공정위는 이들 법인과 전·현직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공사업 담합은 부실공사 우려를 키우는 것은 물론 국민 혈세를 축낸다는 점에서 특히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이번 입찰 담합에는 업계 ‘빅7’(현대·대우·SK·GS건설, 삼성물산,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이 모두 가담했다. 대우·대림산업·삼성물산은 카페에서 모여 사다리 타기로 추첨을 하는가 하면, 담합 약속을 잘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찰 때 경쟁사 직원들이 참관해 서로 감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빅7’을 포함한 21개사는 이런 방식으로 최저가 입찰 13개 공구의 공사를 따냈다. 담합 규모만 3조5980억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공사비가 부풀려지고 설계·공사가 부실해졌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건설업계의 공공사업 입찰 담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인천·대구·부산 지하철 공사 담합과 경인아라뱃길 담합 등으로 약 2000억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최근 2년간 담합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건설사만 46개사, 4500억원에 달한다. 이번까지 합하면 과징금만 1조원에 달한다. 업계는 과징금이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지난 23일엔 주요 건설업계 대표와 임원 150여 명이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업계가 몇 년째 마이너스 성장과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며 ‘생계형 담합’에 대해 선처를 호소했다. 이번 담합을 보면 업계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추진된 대형 국책사업은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된 측면이 있다. 최근 5년간 4대 강 사업 등 국책 사업에 60조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이런 정부의 선의를 수천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되갚았다. 이런 고질적 담합 관행을 뿌리 뽑으려면 미국처럼 회사 문을 닫게 할 정도의 징벌적 과징금과 주모자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