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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5)<제68화 개헌사사 의원내각제개헌>의원직사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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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11일 국회에 제안되기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개헌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회위원 선거일자를 30일 이내로 잡았다가 이호 내무장관이 국회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발언에 45일로 부칙조항을 바꾼 것을 비롯해 10여 군데가 손질됐다.
제안되기 하루전날인 5월10일 밤까지 손질된 주요내용은 ①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서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선거하고 대통령이 이를 확인한다 ②헌법재판소와 법원권한간의 명백한 규정 ③처음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는 민위원 집회일로부터 5일 이내, 최초의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선거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지명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자유당 정권 하에서 부당하게 치부한 재산에 대한 몰수규정은 두지 않았다.
개헌안이 이밖에 ▲기본권 제한에 대한 원칙적 유보조항을 없애고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규정을 금지 ▲헌법재판소의 신설 ▲국회위원 총선거 전날에 현국회해산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개헌안의 제안이유서 문안을 둘러싸고 자유당과 민주당위원간에 다소 의견이 엇갈렸으나 결국 『4·19학생의거를 계기로 한 정권교체의 과도적 단계에 있어서 전국민에 팽배하는 민주적 개혁의 역사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의 제1조치로서 이 개헌안을 제출한다』고 제안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는 선에서 합의됐다.
제안이유서는 『12년 전에 선의에서 출발한 대통령 책임제가 추악한 부패를 상반한 독재정치로 전락했다』고 지적하고 『전면적 개혁의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국정의 전반에 걸쳐 언제든지 국민에게 책임을 지게되는 내각책임제로 개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개헌안의 국회제안이 이뤄져 공고된 직후 정국은 뜻하지 않은 긴장사태가 발생했다
자유당위원들이 위원직 사퇴를 결의한 것이다.
자유당위원들은 정치적 자위책으로 의원총회에서 총사퇴를 결정하여 1백44명의 자유당위원중 95명이 사퇴서를 조경규 총무에게 제출했다.
위원직 사퇴서를 국회사무처나 의장에게 제출치 않고 원내총무에게 맡긴 것은 다분히 정치적 「제스처」의 성격을 띤 것이지만 내각책임제 개헌을 앞둔 정국에 미묘한 파문을 던졌다.
위원재적수 2백22명중 1백44명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당위원중 95명이 사퇴서를 제출한 것은 개헌안의 통과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신경을 안쓸 수 없었다.
4·19사태 이후 전국각지에서 방화·파괴·살상등 보복행위가 자행되어 자유당위원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5월초 권중돈 위원외 11인의 제안으로 보복행위의 중지를 요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분위기인데다가 과도정부가 자유당 고위간부들에 대한 부정선거관련혐의수사를 본격화하자 심한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자유당 당무위원인 이재학 국회부의장은 허정과도정부의 검찰방침이 선거부정을 범죄 면에서 다스리지 않고 일종의 정치범으로 다스리려는 경향이 있다고 비난하고 자유당 당무회의나 기획위원회는 부정선거음모나 막대한 정치자금조달과 공적으로 관련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부의장은 과도정부의 할 일은 빔죄를 법에 따라 다스리는 것뿐이며 사건을 정치적으로 다룰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도 만일 검찰의 수사방침이 정치범을 다스리는 경향을 띤다면 우리는 국회의 뒤처리 임무마저 포기하고 즉각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같은 이부의장의 비난성명은 자유당 당무회의가 부정선거의 총본산이었다는 심증아래 3·15선거당시의 전 당무위원을 입건할 것이라는 신문보도에 자극을 받은 것인데 개헌안을 처리해야할 우리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간단히 넘어가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자유당위원의 결의가 단순한 엄포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건국 이래의 꿈이었던 내각책임제개헌은 또다시 무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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