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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3번 강하 … '혼을 나누는 의리' 중시 김보성보다 원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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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특전사 강명숙 준위는 ‘하늘의 꽃’으로 불린다. 지난 30년간 하늘을 차고, 구름을 누벼왔다. 그는 무엇보다 팀플레이를 강조했다. 동료에 대한 믿음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특전사 특수전교육단. 일명 ‘검은 베레모’, 대한민국 최정예 특수요원의 요람이다. 약 158만6700㎡(48만 평)에 이르는 이곳 강하(降下) 훈련장에 바람이 불었다. 강명숙(48) 준위가 개방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무게 20㎏의 MC- 4 전술낙하산이 활짝 펴졌다. 낙하산 뒤로 백마산을 품은 창공이 흐른다.

 강 준위는 현역 최다 낙하산 강하 기록 보유자다. 지금까지 총 4033회를 뛰어내렸다. 날고 긴다는 남성 특전사 요원들도 범접할 수 없는 수치다. 영화 ‘지. 아이. 제인’의 데미 무어 같은 근육질 여전사를 기대했으나 강 준위는 마음 넉넉한 누이를 닮았다.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의 여유랄까, 말이 부드럽고 또렷했다.

 “바람의 느낌이 좋아요.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저도 모르게 겸손하게 됩니다. 뭐든지 자만하면 사고가 나거든요. 인터넷 아이디도 ‘윈드(wind)’를 씁니다. 평소에도 길을 걷다가 바람이 불어오면 낙하산 조종 줄의 팽팽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바람에 몸이 즉각 적응하는 거죠.”

 그는 낙하산 훈련을 인생에 빗댔다. “낙하산 줄은 적당한 긴장을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팽팽해도, 느슨해도 안 되죠. 사람 관계도 그렇습니다. 그게 깨지면 서로 다치게 되죠.”

 강 준위는 올해로 군 생활 꼭 30년째다. 1984년 서울 용산 여군훈련소에 입대한 그는 이듬해 임관부터 지금까지 줄곧 하늘을 친구로 삼아왔다. 현재 보직은 낙하산 정비포장반장. 군복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금장월계(골드 윙) 휘장이 가장 큰 자랑거리다. 1000번 이상 강하해야 부착할 수 있는 영광의 상징이다. 그는 “항상 왼쪽 가슴을 내밀고 다닙니다.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 특전사 지원, 결단이 필요했을 텐데요.

 “고향이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산골 마을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중·고 시절에는 ‘여학생’ 잡지에서 여군을 꿈꾸는 친구들과 펜팔도 맺었고요. 오직 하나, 군인이 되겠다는 꿈밖에 없었습니다.”

 - 결국 꿈을 이룬 셈입니다.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면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봅니다. 여군에 지원하려고 타자(한글 1급, 영문 2급) 자격증을 따고, 태권도 유단자도 됐습니다. 그래도 한 번 떨어졌습니다. 이듬해 합격 통보 전화를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제 인생의 첫 기쁨이었습니다.”

 - 다른 기쁨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도 결혼?(웃음) 느낌은 전혀 다르지만요. 그리고 98년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2등을 했을 때입니다.”

 - 1등도 아닌데요.

 “군인올림픽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 중국 팀이 1위를 했는데, 몇 해 뒤에 열린 한·중 대회에서는 우리가 우승을 했어요. 그때의 경험을 후배들에게도 자주 들려줍니다. 세상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요.”

 - 여군 중에 왜 특전사를 선택했죠.

 “여군 장교후보생으로 함께 훈련을 받았던 김귀옥 대령의 지지와 격려가 컸습니다. 제 키(1m60㎝)가 크지 않아 낙하산 강하에 상대적으로 유리했고요. 아무래도 공기저항을 덜 받거든요.(웃음) 85년 4월 첫 강하 때의 성취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 두려움이 무척 컸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끝났는지도 몰랐습니다. 두 번째부터 발 아래 땅이 보이고, 낙하산 펴지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시범작전도 기억에 남습니다. 관객이 꽉 찬 잠실종합운동장에 내려앉았죠. 조그마한 오차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

 - 어느 정도 정확성이 요구됩니까.

 “보통 1만 피트(3048m)에서 뛰어내립니다. 처음에는 프리 폴(free fall), 즉 발로 방향을, 손으로 높낮이를 조절하며 40여 초 떨어지다가 4000피트(1249m) 지점에서 낙하산을 폅니다. 착지까지 5~6분 걸리는데, 지름 5㎝의 원판을 밟는 훈련을 거듭합니다. 그 정도는 밟아줘야 어떤 침투 임무라도 완수할 수 있습니다.”

 - 말이 4000회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한창 때는 하루에 최대 9회, 평균 4~5회 훈련했습니다. 요즘에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실전 감각유지 훈련을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명령이 떨어지면 누구보다 더 잘해낼 수 있습니다.”

 - 항상 생과 사의 경계를 느끼겠죠.

 “저도 위험했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침과 파스를 달고 살았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 간의 믿음입니다. 보통 5명이 한 팀을 이루는데, 위급한 순간에 서로 도와주고 구해준다는 신뢰가 절대적입니다. 특전사에서는 ‘혼을 나누는 의리’라고 합니다. 탤런트 김보성씨의 의리보다 저희가 원조인 셈이죠. 프리 폴 때 눈을 마주 보는 것(eye contact)이 가장 중요합니다. 살려고 하는 인간의 간절한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공수부대 낙하산의 평균 가격은 800만원 남짓. 보통 10년, 300회 정도 사용한다. 강 준위가 지금까지 멘 낙하산의 총 가격은 얼추 1억원에 이른다. 낙하산에 군장 무게를 합하면 40㎏. 2만5000피트(7만6200m)까지 올라가는 고공훈련 때는 산소마스크까지 껴야 한다. “낙하 직전에 누구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저도 반야심경·주기도문 등 외울 거는 다 외워봤어요. 하느님·부처님도 동시에 찾았고요.”

 - 긴장을 푸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면요.

 “강하부터 착지까지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합니다. 훈련이 끝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죠. 절로 종교적 인간이 됩니다. 매번 두렵지만 그래도 다시 비행기에 오르는 건 군인으로서의 전우애와 책임감 때문일 겁니다.”

 - 55세 정년까지 이 일에 전념하겠죠.

 “그럼요. 하늘에서 내려올 때 태극기·부대기 등 목표 지점의 깃발을 볼 때 생기는 자부심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깃발이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첫 꿈을 이룬 힘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제게 또 다른 꿈이 생겼습니다.”

 - 하하하, 의욕이 대단합니다.

 “제 경험과 재능 모두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공수교육 교본을 쓰고, 그간 겪은 얘기도 책으로 낼 생각입니다. 전역 후에는 군 생활을 힘들어하는 병사들의 심리상담사가 되려고 합니다. 엄마나 누나처럼 말이죠. 현재 사회복지상담 박사 과정 3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진로상담사 등 자격증도 세 개 있습니다.”

 - 27일은 한국전쟁 정전 6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마지막으로 특전사 자랑을 한다면요.

 “말 그대로 산전·수전·공중전을 다하는 곳입니다. 물론 훈련이 고되지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기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라 와서 특별해지는 곳이라고 할까요. 요즘에는 경쟁률이 6대 1에 이를 만큼 인기가 있어요. 본인이 원하면 장기 복무도 가능하고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평생을 버텨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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