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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는 고은맘] 누군가의 엄마도 누군가의 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제 새끼가 아프면 엄마들이 하는 말입니다. ‘내 새끼’가 없을 땐 어렴풋하던 이 마음을 지금은 또렷하게 알겠습니다.

요즘은 고은양이 참 말을 안 듣습니다. 고집도 세졌고요. 뭐든 자기가 하는 걸 방해하면 짜증을 냅니다. 그러면서도 엄마 껌딱지라 항상 봐줘야 합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입니다.

고은양은 제가 신문을 보고 있으면 혼자서 놀다가도 빛의 속도로 저에게 기어와 신문을 잡아챕니다. 두 손을 모아 신문을 잡습니다. 찢으면서 놀기만 하면 다행일 텐데 신문을 만지작거리다가 먹어 버립니다. 처음엔 고은양이 치발기 등 공식적으로 빨아야 될 것이 아닌 것을 빨면 무조건 “지~ 지~” 하면서 뺏었습니다. 하도 빨아 대니 감당이 안 돼 포기했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두기로요. 대신 제 마음가짐을 바꿨습니다. 세균도 먹고 자라야 건강해진다, 는 식으로. 그래도 신문은 안 됩니다. 침이 묻어 젖으면 고은양이 삼킬 수가 있어서요.

그래서 신문을 뺏으면 난리가 납니다.

“고은이가 신문을 가지고만 놀면 엄마가 주는데, 자꾸 먹으니깐 뺏는 거야. 안 먹으면 주는데 먹으니깐 안 돼.”

엄마가 이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고은양은 나라를 잃은 듯이 웁니다.

“어~음마, 어~음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저를 노려봅니다. 저 보란 듯이 소리를 더 지르면서 우는데, 옆집에 민폐될까 재빨리 안아 올립니다. 그러면 언제 그랬느냐며 울음을 그칩니다. 뭘 또 만질까 두리번거리죠. 그러다 내려놓으면 지 마음에 안 드는지 또 웁니다. 그럴 땐 재빨리 소리 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주의를 끌어야 울음을 그치고 장난감에 관심을 보입니다. 뭐, 그것도 잠시지만요. 곧, 제 껌딱지가 돼서 저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며칠 전 일이 있었습니다.

예의 고은양이 짜증을 내는데 제가 어쩌다가 손으로 고은양 얼굴 어딘가를 건드린 듯합니다. 순간, 고은양은 1초간 조용하다 갑자기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얼굴을 보니콧대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왼쪽 콧망울에선 피가 났습니다. 제가 손톱으로 긁은 겁니다.

고은양을 안아 들고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면서 한참을 달랬더니 겨우 진정이 됐습니다. 다시 원래 모드로 돌아와 제 팔에 안긴 채 건드릴 게 뭐 없나 두리번거립니다.

진정이 돼 다행이긴 한데 고은양 콧망울엔 여전히 피가 맺혔습니다. 닦아주려는데 고은양이 고개를 자꾸 돌리는 탓에 깨끗이 닦아주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제 하얀 티셔츠의 어깨 부분엔 고은양 피가 묻었습니다.

고은양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노는데 고은양 얼굴을 보는 제 마음은 편치 않네요. 얼굴 볼 때마다 유난히 상처가 커 보입니다. 괜히 흉지지나 않을까 걱정 되고. 콧대 부분은 빨갛게 부어올랐습니다. 고은양은 졸리면 손으로 귀를 잡아뜯고 얼굴을 할퀴는데 그러다 상처를 건드려 덧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고은양 얼굴을 보더니 “왜 이렇게 된 거냐”며 “혼자 한 거야?” 묻습니다. 제가 자초지종을 설명 나니 “고은이가 엄마 때문에 많이 아팠겠네” 이러면서 “고은이 괜찮아, 괜찮아” 합니다. 남편이 그러려는 건 아니겠지만 왠지 말투가 저를 비난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마음이 두 배로 편치 않네요.

다음날에도 고은양 상처는 여전합니다. 볼 때마다 제 마음도 아픕니다. 차라리 제 얼굴에 상처가 났으면 좋았을걸. 고은양의 하얗고 뽀얀 피부에 상처가 너무 도드라져 보입니다. 전 그날 밤, 제 손톱을 바짝 잘랐습니다.

조리원 밴드에는 잠깐 한 눈 판 사이 아기가 뜨거운 이유식에 손을 데어 응급실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그 조그만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사진과 함께요. 그 엄마는 “다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밤새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걱정과 격려의 마음을 담은 댓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구절이 있더군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엄마로 산 시절보다 누군가의 딸로 산 시절이 훨씬 더 길다. 그러니 엄마로서는 서툴 수밖에 없다’, 라는.

아직도 ‘엄마’ 라고 불리는 것보다 ‘엄마’ 하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합니다.

그래도...

서툰 엄마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란 기자

[사진 설명]

1) 무조건 먹고 보는 ‘식탐왕’ 고은양. 콧망울에 상처가 아직도 또렷. 엄마가 미안해.
2) 선물 받은 장난감도 일단 먹어보고 확인. D라인의 자태를 보소.
3) 동생(이라 하지만 실은 4개월 차이) 하루와 함께 백화점 나들이. 하루맘(한애란 기자)도 초보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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