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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물상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고양군에서 또 4살 짜리 어린이가 개들에 물려 그 자리에서 죽었다. 벌써 몇 번째 있는 일인지 모른다.
한국의 개는 예부터 착했다. 언제나 어린이 편이었다.
19세기말에 한국을 찾은 미국선교사 「제임즈·게일」이 『코리언·스케치』에서 시골마을을 찾았을 때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여기서 수많은 개와 벌거벗은 아이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개들은 「게일」을 보자 『눈을 번뜩이고 목의 털을 곤두세우며…나를 향해 짖어댔다….』
그렇게 무서워 보이는 개들이 이상하게도 아이들에게는 꾜리를 흔들어 함께 놀자고 했다.
「게일」이 한국의 개를 처음보고 무서워한 까닭이 있었다. 서양의 개들은 원래가 사나운 것이다.
중세기 때의 「런던」사람들은 해만 지면 집밖을 나가지 못했다. 도둑이 무서워서라기 보다 들개들이 무서워서였다.
그토록 사나왔던 서양의 개들이 지금은 매우 순해졌는지 영화에서도 보면 서양의 어린이들은 개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실 온 서양개가 모두 순해진 게 아니다. 사나운 개는 여전히 사납다.
그저 그런 개들은 가정집에서 기르지 않을 뿐이다.
「게일」이 시골서 본 개들은 모두 누렁이·삽살개 등이었을 것이다. 그런 재래종이 사나와진게 아니다. 그저 눈에 띄게 줄어든 뿐이다.
그 대신 외국에서 들어온 맹견들이 판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어린이를 물어 죽인 개도 토좌대이다.
왜 그런 살인견들을 그토록 심한 눈총을 받아가면서까지 키우는지 알 수가 없다. 도둑을 지키자는 이유에서도 아니다.
원래가 『완물상지』란 말은 개에서 나왔다.
주의 무왕이 천하를 통일하자 서려라는 나라에서 개를 한 마리 선물 받았다. 그러자 소공석이라는 현인이 『인을 완하면 덕을 잃고, 물을 완하면 지를 잃는다』며 받아들이지 말라고 간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단속의 눈을 피해가며 값진 맹견들을 사들이는 까닭은 완물상지의 탓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고사도 있다.
춘추시대에 진에 조순이란 명신이 있었다. 그러나 암우한 임금영공은 그를 미워하여 맹견으로 하여금 물어 죽이도록 했다.
간신히 그 자리를 모면한 조순은 후인을 타이르기를 『인을 기하여 견을 용한다. 하나 맹하다한들 개가 뭣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의 맹견의 주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낳고서야 어떻게 끔찍한 일이 번번이 일어나도 눈썹하나 까딱이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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