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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개헌비사 발췌개헌파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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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관제데모에 소환조사특위구성 항거|귀향활동 중 폭력단에 붙잡혀 곤욕 전쟁중에, 그것도 적에게 쫓길대로·쫓겨 최남단까지 밀려 내려온 임시수도에서 관제민의가「데모」로 비화하는것도 한심스런 일이었지만 어용단체의「데모」 대들은 「건의문」 을 전달하겠다고 신익희국회 의장실에까지 밀어닥쳤다.
의원을 「소환」 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불법상태에서 의원들을 「유린」 한것이다.
국회는 이같은 사태와 관련하여 국회의원 소환문제조사 특위를 구성했다. 엄상섭(광양) 이종영(정선) 이석기(부여갑) 태완선(영월) 서범석(옹진갑) 소선규(철산갑) 서인환(반능) 서민호(고흥을)의원과, 그러고 내가 위원으로 결정됐다.
특위활동의 초점은 의원소환이 적법한것이 이념을 천명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특위는 이승만대통령에게 공개질문서를 작성해 보냈다. 1주일만에 국회에 보내온 이대통령의 회답은 국회를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개헌안을 반대했다고하여 국회의원을 소환하는 방법으로 문책하는것은 명백한 헌법위반이 아닌가』 라는 필문에 대해『그 안건이 부결된것은 헌법경신을 위배한 것이므로 민중이 교정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헌법과 관계없는 일』 이라는게 이대통령의 답변이었다.
『헌법에 의원임기가 4년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의원소환은 불가능한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임기안에는 무엇이든지 다 할수있다는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민중이 지지하는것은 다할수있으되 민의를 따르지 않고는 어려울것』이라고 모호하게 답변했다.
나와 특위위원들은 이같은 이박사의 고압적인 자세에 격분 ,곧 특위 이름으로 대통령을 규탄하는 결의문를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과 현행법 절차를 무시하고 공권력·기타의 위력에 해의 조작된 민의를 진실한 민의로 가탁함으로써 민주법치국가의 기본요건인 현행 헌법과 현행 법률을 부인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것』 이라는 요지였다.
내가 초안작성을 맡은 이 결의안은 l백65명중 찬성 1백10명·반대 49명으로 가결됐다.
국회는 이에 그치지않고 김병노대법원장을 국회증언에 내새웠다. 사법부의 도움을 받아 소환운동에 대한 정부측의 모호한 입장을 규명, 규탄하자는 의도였다.
김대법원장은 소환의 적법여부에 관해『그것을 성문화하느냐 않느냐하는데 있어서는 헌법에 반드시 규정해야한다』 고 말하면서 『다른 법률에 규정하더라도 실행상의 절차법이 따로있어야 법률로서 하자가 없는줄로 안다』 고 법에 의하지 않은 소환은 안된다고 밝혔다.
이렇듯 긴강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의원들은 지역구에 내려가 귀향보고 활동을 벌였다. 그해 봄 나도 선거구인 원주에 내려갔더니 거기에도 벌써 백골단·「땃벌떼」가 생겨 밤중이면 벽보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나는 면 단위 귀향보고 일정을 짜놓고 시국대처방안이나 전황등을 설명할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나와함께 일하는 조직원들은 소환청부업자들로부터 협박과 공갈을 당해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래도 나는「스케줄」에 따라 자동차를 타고 보고회장을 돌았다. 나를 지지하는 선거구민들이 계속보고회에 모여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청년단」「테러」단이라 하더라도 원주바닥에서는 서로들 뻔히 아는 처지라 나를 면대해서 돌을 던질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원주가 아닌 다른 이웃지방의 「테러」 단이 몰려왔다. 이런 움직임을 나도 정보망을 통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어느날 보고회를 위해 원성군 곤림면으로 갔는데「트럭」한대가 따라왔다. 그동안 나에게 여러차례「메시지」를 보냈는데 응하지 않으니까 습격해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와 마주친 그들은 나에게 요구사항을 내세웠다. 『윤길중의원을 환영하는 원주군민대회를 내일 열것이니 꼭 나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혼자서 각 면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민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못나가겠다』 거니 『환영한다는데 못나온다는게 무슨소리냐』 는 고함이 오가다가 나는 『뻔히 다 아는것이니 긴소리 할것없이 대표와 얘기하겠다』 고해서 그들이 지정한 한창고에서 20여명과 다시 만나게됐다.
그들은 정부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된후 내가 제의한 내각책임제 개헌주장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권리를 군민에게 돌려주도록 한다면 영웅으로 환영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참 좋은 얘기』 라며 『이 박사를 어떻게 무시는게 옳은지를 얘기해보자』 고 하자 그들은 『여기가 연설장인줄 아느냐』며 참석여부를 다그쳤다.
나는 『군민의견을 잘 받들어 정치하겠다는 의미에서 시조를 하나 생각한게 있다』 며 눈을 감았다.
『겉으로 좇는 인심속으로 곪았으니 곪은건 진심이요, 좇는건 공포심이다. 곪아도 좇지 못하니 압제인가 하노라』 좌중은 조용해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내가 강장이냐 의원대접을 이렇게 하는게 아니다』면서 뛰쳐나왔다. 처음의 살기등등했던 분위기 그대로 였다면 누군가에 의해 붙잡혔을 것이다.
곧이어 나에게도 소환장이 날라왔다. 약간의 돈을 마련해 소환곤욕을 겪는 몇몇 동료의원들을 찾아본뒤 쓸쓸한 마음으로 부산에 돌아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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