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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값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 한해동안 술값으로만 날려버린게 1조원이 넘는다고 새삼 놀란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남몰래 탕진할 수 있었느냐고 주부들의 서슬도 퍼렇다.
하나 마시고 싶어서 마신 것도 아니요, 돈이 남아돌아서도 아니라는게 술꾼들의 푸념이다.
닭장 안에 올려 앉아있는 암탉들은 가만히 보면 그 중의 한 마리가 자기 보다 서열이 낮은 닭을 쫀다. 그러면 그 닭은 또 자기 보다 아래인 닭을 쫀다.
이렇게 서열을 따라 쪼아나간다. 그러니까 제일 서열이 아래인 암탉은 언제나 쪼이기만 한다. 자기가 쫄 수 있는 상대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닭들이 서로 쪼아내려가는 것은 꼭 손아래를 구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서열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이것을 「페킹·오더」(PECKING ORDER)라고 한다.
사람의 사회에서도 이런 「페킹·오더」가 성립되고 있다.
그러니까 어느 직장에서나 말단에서는 늘 쪼이기만 한다.
여기서 생기는 울분이며 욕구불만을 해소시키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술 마시는 일이다.
값으로는 맥주가 제일 많이 팔렸다지만 양으로는 소주가 제일 많이 소비됐다는게 뭣보다도 이를 말해준다.
더우기 울화가 치밀어오는 꼴을 너무나도 많이 보고 듣게 될 때에는 보신을 위해서도 술이 제일이다.
시비를 잊고 은수를 잊고 생사 병사를 잊는게 구제의 길이라는 노장의 가르침도 있다.
그런 깊은 도를 닦을 수도 없는 중우들에게는 술이 모든 걸 잊게 해 준다.
맥주도 1인당 1백8병씩 마신 꼴이 된다지만 2백병 이상씩 마셔치우는 「체코」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뉴질랜드」 등에 비기면 아무 것도 아니다.
「프랑스」사람들은 77병 밖에 안마신다지만 그 대신 그들에게는 「와인」이 있다. 미국인에게는 「버번·위스키」가 있다.
만약에 우리네 딱한 남편들이 소주라도 마시지 않는다면 그 대신 집에 돌아와서 아내들을 쪼아야만 정신건강도 유지된다.
그러니까 아내 학대의 사례가 외국보다 적은 것은 술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청량음료수도 국민 한 사람이 지난 한해에 44병씩이나 마신 꼴이 된다고 한다.
여기에도 그럴싸한 까닭은 있다.
너무 화기가 뻗치면 목이 탄다. 자연 시원한걸 찾게 마련이다.
여유가 많아서 마시는게 아니다. 적자가계라면서도 「사이다」가 29%에서 37%나 더 팔린 현상은 이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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