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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 읍내리 민속자료 제39호|구한말 판소리의 대가 신재효선생 서재복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말 판소리 사설문학을 김대성한 신재효선생의 서재(민속자료 제39호)가 김소희씨등 국내 국악인들에 의해 제모습을 되찾게 됐다.
1850년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세워진 신선생의 서재는 왜정때 일인들이 사용했다가 지금은 고창경찰서에서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등 여러차례 건물주가 바뀌면서 원형을 잃었다.
정면8간·측면2간의 이 건물은 당초 초가였으나 왜정때 기와를 올렸고 지금은 함석지붕으로 바뀌었다.
원형대로 남아 있는 것은 두리기둥뿐, 멀리서 물을 끌어 마루밑을 통해 서재밖 연못으로 흘러 나가도록 돼있던 운치있는 꾸밈은 매몰돼 이제는 연못조차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김소희씨등 국내 국악인들과 고창군문화원은 신선생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고 물건자체가 지니고있는 가치를 살리기위해 지난해부터 서재의 복원운동을 폈다.
국악인들은 신선생 서재복원사업비 마련을 위한 공연을 갖고, 고창군문화원에선 모자라는 사업비마련을 위해 도와 군을 쫒아다녔다.
이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사업비는 5천만원.
전북도는 올해 1천8백50만원의 사업비를 예산에 계상, 경찰서 관사로 쓰이는 3동의 건물등 대지 3백35평을 매입하고 경내외배수로 시설과 안내판 시설, 가택보수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국악인들과 고창군문화원은 신선생의 서재가 옛 모습으로 되찾으면 가야금등 선생의 일용품과·저서 1백여점을 한눈에 볼수 있게 천평규모의 유물전시관을 겸한 판소리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다..
신선생은 자가 백천, 호는 동리다. 1812년 고창에서 태어나 38세때부터 이곳 서재에서 판소리를 연구해 계통없이 불러 .오던 광대소리를 춘향가·심청가·박타령·가루지기타령·보끼타령·적벽가등 여섯마당으로 체계를 세우고 독특한 창의로 판소리 사설문학을 집대성했으며 춘향전·박타령·토끼타령·심청전등을 창극화하는등 일생을 판소리연구에 바쳤다.
특히 중선생은 고종13년 64세때 굶주린 사람들은 구제한 공으로 통공대부에 올라 호조참판으로 동지중추부사를 겸했다.
문하생으론 철종때 순창출신으로 창극에 대한 이론과 비평에 일가를 이루었고 천자뒤풀이에 뛰어났던 명창 김세종과 정춘풍·채선·허금이 있고, 오늘의 김소희·박초월등 국내 국악인들로 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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