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못지 않게 깨끗한 선거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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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앞으로 5년은 있어야 있을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온 것 같다.
헌법이 개정된다니까 두고 봐야겠지만 앞으로 선거는 자주 있을 것 같다.
국회의 권한을 강화해 놓고 견제기능이 없다면 그것도 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에 국회 해산권을 준다면 선거가 잦아질 것은 뻔한 노릇이다.

<선거망국이란 말 들어서야>
자주 선거를 하는 것이 국력의 소모가 되는 것은 확실하나 필요한 소모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유신체제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6년으로 한 것은 국력의 낭비를 막자는데서 그 명분을 찾고 있었고 실지선거로 인한 국력의 소모를 막은 것도 사실이다. 국력의 소모는 있다해도 선거는 있어야겠다는 것이 그 동안 얻은 국민의 느낌이다.
그러나 되도록 낭비는 막아야 한다. 선거망국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한번 선거를 치르는데 국가의 부담이 될 선거관리비용도 무시 못하겠으나 그 보다는 후보자의 부담이 될 선거비용문제가 더 크다.
이웃 일본에서는 오낙십당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단다. 10억「엔」을 쓰면 당선되고 5억「엔」을 쓴 사람은 낙선한다는 얘기다. 곧 이 안 들리는 얘기 같지만 사실 그런 것 같다.
돈이 있다는 것이 인격과 능력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마다할 수 없겠으나 그렇지 못한 것이 실정이다.
돈이 많다는 것은 축재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축재능력의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국회를 구하는 길은 선거에 돈을 못 쓰게 하는 수밖에 없다.
돈을 못 쓰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생각할 수 있다.
돈을 써도 당선에는 별무 효과였다는 선거풍토의 조성이 급선무라 하겠으나 이와 같은 풍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꾸준한 노력이 후세를 위한다는 생각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이 풍토는 유권자의 자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아직도 작대기 선거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형편에 큰 기대는 걸 수 없다.

<법정비용 초과하면 엄단을>
둘째, 후보자로 하여금 아예 돈을 쓸 생각을 할 수 없게 하는 선거제도의 실시-유권자가 1백만명을 넘는다면 부정한 돈을 쓸 생각을 못할 것이 아닐까.
당면과제로서는 선거사범의 철저한 단속 검거, 특히 법정선거비용을 초과 사용한 후보자의 단속처벌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법에 법정선거비용이 규정되어 있다. 후보자·선거사무장·회계보조원이 법정비용을 초과 지출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있다.
법정비용의 초과지출로 선거사무장이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았을 때 당선자가 징역이나 금고 모는 5천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게된 때에는 후보자의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되어있다.
또 선거사무장이나 후보자가 금전·기타의 이익으로써 유권자를 매수한 죄로 징역이나 금고의 처벌을 받은 경우(후보자는 5천원이상의 벌금형을 받은 경우도 포함)에도 후보자의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선거의 역사가 성년을 넘었는데도 선거비용의 과다지출이나 유권자에 대한 금전 매수로 후보자나 선거사무장이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없다. 소문의 탓인지 그 때문에 후보자의 당선이 무효가 되었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법정비용의 초과지출이나 금전에 의한 매수행위는 금력에 의한 부정선거임이 명백하다. 부정선거논의가 그렇게 시끄러우면서도 금력에 의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소리가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금력에 의한 부정선거 규탄>
과거의 선거에서 선거법을 엄격히 적용할 때 과연 몇 사람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선거 선거비용문제가 크게 거론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아쉬운 판에 모처럼 당선된 사람을 당선무효로 알 수 없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자파의원의 부정에 눈을 감으면서 상대방의 비위만을 들출 수 없는 사정도 알만하다.
그런 점에서 양심정치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 사정과 양심 때문에 금력세 의한 부정선거는 고질화되고 선거범의 처벌규정은 사문화가 되었다. 편의에 따라 칼을 칼집에 넣고 아주 쇠를 채워 버린 꼴이 되고 있다. 여당이라 해서 여당의 부정에 눈을 감고 양심이라 해서 야당의 부정에 눈을 감는다면 앞으로 이 땅에는 금력에 의한 부정선거가 판을 칠 것이다. 돈을 뿌리는 것은 소득의 재분배라는 점에서 소망스럽기는 하나 재분배만이 달가울 수는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재분배에 앞서 공명한 선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선거사범에 관한 한 기소편의주의가 안 된다면 하물며 검거변의주의랴.

<현재의 법정비용은 늘려야>
그러나 과거의 타성을 경계하는 조치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 과거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별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릇된 것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 위기관리정부에 여야가 없는 것이라면 앞으로 있을 선거는 선거법의 처벌규정을 사문에서 구하는 절호의 기회일까 한다. 가차없는 처단과 당선무효조치는 돈 안 드는 선거의 최소한의 보루가 될 것이다.
선거에 돈을 많이 쓰면 속된 말로 본전생각이 날것이오 본전생각만 해도 좋겠는데 이자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예를 흔히 보아왔다.
악대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은 선거에는 없어야겠다. 돈 안 드는 선거를 누가마다 하랴마는 돈 안 드는 선거는 곧 떨어지는 선거(낙선)를 의미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 쓰는 경쟁은 단속하여야 되고 그 단속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간만이 국민에게 돈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할 것이다. 다만 현재의 법정비용은 늘려야 할 것이다.
개헌도 중요하지만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가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모두 다짐했으면 좋겠다. 【김갑수 <전대법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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