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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보다 SKT가 더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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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복잡한 법이 SK그룹 주력사인 SK㈜와 SK텔레콤의 운명을 갈라놓을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크레스트 증권이 느닷없이 최대주주로 부상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렸던 SK㈜는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을 여유가 생겼고, 상대적으로 느긋했던 SK텔레콤은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게 됐다.

공정거래법.외국인투자촉진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상의 서로 다른 '외국인'관련 규정이 거대 기업의 운명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이렇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4일 "한 외국인의 지분이 10%를 넘어선 기업은 외국인 투자촉진법상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간주한다"며, SK㈜를 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 제한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K㈜의 입장에서는 크레스트증권의 지분이 10%가 넘어선 만큼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 중 출자총액한도에 묶였던 지분(7.6%)의 의결권이 되살아나게 됐다. 기존의 계열사 지분 등을 포함하면 의결권 있는 주식이 총 17.46%로 증가, 그만큼 경영권 방어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런 가운데 SK텔레콤은 경영권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외국인들이 통신사업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전기통신사업법상의 외국인 규정으로 뜻하지 않은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외국인 투자촉진법과 달리 외국인이 15%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그 기업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크레스트 증권은 추가로 SK㈜ 주식을 매입해 지분율을 14.99%까지 높였다. 크레스트 증권이 0.01%만 지분을 더 늘리면 SK㈜가 전기통신사업법상으로도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정보통신부 김대희 통신기획 과장은 "법상 국내 법인을 외국인으로 보는 경우는 외국인 지분이 합쳐 80%를 넘거나 1인 대주주가 외국인이고 15%를 넘는 경우인데, SK㈜의 경우 후자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SK텔레콤의 외국인 지분은 법정한도를 넘어서게 된다. 현재 SK텔레콤의 외국인 투자한도는 49%로 이중 40.96%가 이미 소진된 상태다. 따라서 SK㈜가 외국인으로 간주될 경우 SK텔레콤에 대한 지분(20.85%) 중 외국인 한도가 남은 8.04%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SK텔레콤에 대한 SK그룹의 지배력도 그만큼 약해진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크레스트가 만일 SK㈜지분 15% 이상을 확보해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이 없어지더라도 SK그룹 지분이나 자사주, 우호 지분 분포 등으로 볼때 경영권이 위태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단 말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느 경우에라도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는 것을 좌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크레스트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기는 방법, 외국인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 SK㈜가 가진 지분율을 낮추는 방법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아직은 크레스트가 과연 1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것인지 등에 대해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날 SK 계열사 주가는 일제히 올랐다. 경영권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시장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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