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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먹기 아까워 … 디자이너 네 자매 '자연 식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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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마이알레 정원 한가운데 식탁을 펴고 네 자매가 둘러앉았다. 왼쪽부터 ‘디자인 알레’ 우현미 소장, ‘솔리드 옴므’ 우영미 패션디자이너와 우장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이알레 우경미 대표.

일요일 오전 11시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434-3번지. 카페 겸 라이프스타일 농장인 ‘마이알레(my allee)’의 정원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60대 노교수부터 초등학교 5학년 아이까지, 족히 열서너 명은 돼 보인다. 이들은 ‘우씨네’ 네 자매의 가족이다. W호텔·파크하얏트호텔·현대백화점 판교점 등의 조경을 담당해온 디자인 알레의 우경미(56) 대표와 우현미(50) 소장, 남성복 ‘솔리드 옴므’의 패션디자이너인 우영미(54) 대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우장희(47) 전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파워우먼인 네 자매는 매주 일요일이면 이렇게 온 가족이 마이알레에 모여 식사를 한다.

 마이알레의 대표이자 네 자매의 대장인 우경미 대표는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건 집안의 ‘위대한 유산’을 함께 나누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참 독특한 분들이셨어요.”(우경미) “그 시대에 지나치게 세련된 분이셨죠.”(우장희) “우린 어렸을 때 학교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는 게 정말 싫었어요. ‘이상한 집’에 사는 애들이란 소리를 듣는 게 참 부끄러웠거든요.”(우영미) “그렇게 싫어했던 부모님의 ‘취향’을 네 자매가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니 정말 피는 못 속이나 봐요.”(우현미)

 건축 일을 하셨던 네 자매의 아버지는 독특한 소재를 좋아했다. 그래서 집 안 인테리어도 평범한 집들과는 달랐다. 벽은 꽃무늬 벽지 대신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됐고, 가구도 나무가 아닌 쇠로 된 것들이 많았다. 바닥에도 매끄러운 비닐장판 대신 거친 질감의 요상한 소재를 사용했다. 우현미 소장은 어려서 그 바닥에 넘어져 깨진 상처가 아직도 턱에 남아 있다.

 “차도 유럽 빈티지 자동차를 늘 타셨는데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너무 낡아 잘 멈췄죠. 아버지가 학교에 데려다 주시는 날이면 학교 앞에 멈춰서 ‘탈탈탈’ 연기를 내뿜기가 일쑤였죠. 친구들 보기 얼마나 창피했던지.”(우현미)

 가정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옷 만들기를 좋아해 집 안엔 늘 독특한 색감의 원단과 옷본들이 쌓여 있었다. 보라색 커튼, 노란색 소파…. 물론 네 자매의 옷도 친구들과 달랐다.

가족이 함께 만든 ‘가족 공간’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앞줄 왼쪽이 우영미, 오른쪽이 우경미. 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이는 5남매 중 셋째이자 외동아들인 우중구.

 비범한 취향의 부모에게 불만이 많았던 네 자매는 어느새 자라 부모를 똑 닮은 디자이너가 됐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가족은 닮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취향이나 감각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구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몸으로 체득하는 거구나 알게 됐죠.”(우영미)

 2001년 과천에 땅을 마련하고, 2008년 디자인 알레의 사무실로 건물을 지으면서 이곳 434-3번지는 네 자매의 주말 모임 장소가 됐다.

 “우리끼린 ‘우씨네 함바집’이라고 불러요. 모이면 밥부터 만들게 되니까요. 아이들과 함께 재료를 준비해 요리를 만들고 먹으며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죠.”(우경미)

 밥은 먹어야 하고, 이야기는 많이 해야 하니까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복잡한 메뉴는 탈락이다. 대신 마이알레 정원에서 직접 키운 제철 농작물로 소박하지만 건강한 식사를 한다.

 “그러다 생각했죠. 다른 사람들한테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구나. 카페를 오픈하고 누구나 우리 집처럼 편하게 와서 즐기라는 뜻으로 이름도 ‘마이알레(나의 오솔길)’라고 지었죠.”(우경미)

① 가지 그라탱과 닭 가슴살 크레이프. 검은콩을 갈아 만든 크레이프에 닭 가슴살과 채소를 싸 먹는 요리. ② 토마토 샐러드. 크기가 다른 토마토를 냉장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게 포인트다. 꽃봉오리처럼 말아 올린 것은 주키니호박(돼지호박)이다. ③ 시금치비트 케이크. 색은 곱고 단맛은 덜해 인기가 많다. ④ 단호박당근 수프. 그릇에 담은 후 거칠게 깎아낸 파르마산 치즈가루와 통후추를 뿌려낸다. ⑤ 세 가지 매운맛 채소(양파·대파·셀러리) 리소토. 귀리·통밀·검은 보리쌀로 만든 이탈리안 쌀 요리다.

 우면산·관악산·청계산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이알레 정원엔 연필향나무·측백나무 사이로 철마다 다른 꽃나무가 핀다. 한여름인 지금은 나무수국이 피워낸 흰 꽃이 구름처럼 퍼져 있다.

 카페 식사메뉴는 수프, 샐러드, 리소토가 세트로 나오는 1개 코스뿐이다. 대신 느낌이 매번 다르다. 직접 키운 농작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제철 채소가 바뀌면 조리법, 소스, 드레싱이 달라진다. 한 접시 안에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담아 영양적으로 완벽한 한 끼를 만들자는 게 마이알레의 컨셉트다. ‘디자인’ 전문가들이 고안한 밥상이니 접시 위 색감은 늘 예술이다.

 “아침마다 두 시간씩 오늘 사용할 농작물을 직접 거둬 오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죠.”(우경미)

 “옆집에 산다는 이유로 그 일을 매일 거드는데 대장이 품삯을 안 줘요.(웃음) 알고 보면 디자이너가 아니라 도시 농부예요.”(우장희)

 마이알레 2층에선 정원 손질과 꽃꽂이에 필요한 디자인 용품과 책, 화분들을 판다. 작지만 자연을 집 안에 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가드닝 클래스도 운영한다. 3층에선 때때로 외부 단체와 연결한 작은 공연을 연다.

 “우리 가족이 모이면 하는 일이에요. 장구를 배우는 형부(우경미 대표의 남편 김철주 교수)와 바이올린·기타를 배우는 조카들이 일주일간 자신들의 실력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뽐내는 공연을 하거든요. 그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죠.”(우영미)

 ‘우씨네’ 네 자매가 직접 요리를 만들진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마이알레 운영은 우경미 대표와 우현미 소장의 일이다. 하지만 네 자매와 가족은 늘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낸다. 맛있는 음식, 멋진 자연,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식사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원래 놀아본 사람들이 판을 짠다잖아요. 우리 네 자매는 놀 줄 아니까.(웃음)”

글=서정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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