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측면|한철하<「아시아」연합신학연구원부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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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1운동은 그 자체에 있어서 종교운동은 아니었다. 이 운동은 가장 넓은 의미에 있어서 정치운동이었고 더 정확히 말해서 한민족이 살길을 찾아 전진하는 하나의 민족적 행진이었다. 따라서 이 민족적 평화행진의 대열에는 모든 종교세력이 다 참여 하였다. 천도교·기독 교·불교가 다 함께 이 대열에 각 기의 종파와 교리를 초월하여 민족자주의 정도를 선언하는 한 대열에 참여하였다.
그러면 어찌해서 이와 같은 대 민족운동에 그와 같이 종교세력의 참여가 지배적이었는가? 특히 기독교신도의 참여는 이 운동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국적으로 소실된 공공시설의 거의가 교회당이었고, 곳곳의 교회는 이 민족봉기를 의한 준비의 본부가 되었다. 그것은 첫째 당시에 우리 민족 속에 조직된 대중세력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 거의 종교 세력들뿐이었고, 특히 기독교는 그 종교의 성격상 항시 대중집회의 양상을 띠고 있었으므로 언제나 민중운동에 가장 적합한 매체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교단체들의 주동적 역할의 배후에는 그 정신적 기초의 동질성이 그 원인으로 보여진다.
아니, 오히려 종교에서 3·1운동의 근본정신이 발원되었다고 함이 좋을 것이다
3·1운동의 근본정신은 첫째로 인권과 자유에 대한 정당한 주장이었고, 둘째로 세계평화를 존중하는 보편주의정신이었고, 셋째로 새 시대의 도래에 대한 환희와 신 혁명 개척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신자세였고 무엇보다도 권력주의를 배척하며 평화와 도의를 사랑하는 정신자세였다b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하도다」
이와 같은 종말론적 평화주의사상은 그 성격상 종교적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3·1운동 61돌을 맞는다. 80년대를 맞고 이제 정치발전이라는 민족사의 새 장을 펼치는 우리에게는 마치 3·1 선영들이 보았던 새 시대 새 기회의 도래를 보는 듯 하다.
동시에 3· 1운동 당시에 일제의 어두운 「위력의 시대」의 시대과오 적인 잔재가 그늘지고 있었던 것처럼 남북을 분단시키는 공산세력, 그리고 오늘의 세제 어디에서나 꽉 짜여 있는 권력의 구조들이 자유정신을 억압하고 있다.
먼저 우리 민족 속에서 위력의 시대의 잔재를 추방하고 더 나아가서 평화민족으로써 온 세계에 평화주의의 횃불을 올려야 하겠다.
3·1운동 당시 평화의 「메시지」를 들고 일어섰던 종교들은 이게 그 정신적 근원을 되살려 우리민족정신을 정화시켜야 할 것이다.
민족정신의 순화와 새로운 정신적 차원의 계발이야말로 오늘의 종교인들에게 주어진 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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