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적 측면|김성식<경희대교수·서양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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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1운동의 61주기를 맞아 우리는 이 운동을 어떻게 맞아 들여야 할 것인가? 61년 전의 3·1정신을 그대로 받아 이어가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서 우리의 정성과 존경으로 가슴속에 간직해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될 것인가?
우선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3·l 정신의 전체적「무드」는 인도주의입장에서 일본을 훈계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일본이 이런 훈계에 감복하고 조선에 독립을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가 하면 일본이란 글자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민족자결주의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 방법도 무저항 적이요 평화적이었다. 현대의 독립이 유혈과 부정으로 얻어지는 것과는 아 대조적이다. 세계대로 그러하니 조선도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이오, 그것도 일본질서 안에서 자연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독립운동에는 죽음의 비극이 있는 법인데 독립선언문에는 아주 약관적 기풍이 차 있었다.
보통 3·1운동을 우리의 민족주의 운동의 효시라고 하는데 이것도 현대적 민족주의 사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말하자면 3·1독립선언문의 민족주의는 18세기「유럽」의 인도주의적 민족주의였고 현대의 시민적 민족주의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선언문에는 혈전(2·8독립선언)이라든가 투쟁이란 말은 없다. 또<오인><오등> 그러고<아등>이란 말로 조선사람을 표시했지 <우리 민족><오족>이란 말은 기피다. <민족>이란 것을 의식하기 전에 <일본>을 먼저 의식하고 있은 것 같다.
그러므로 민족의식도 철저하지 못했다.
가장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3·1정신에는 시민적 투쟁적 민족정신보다 왕조적 순국적 애국정신이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철저하지 못한 추상적 요소가 많았고 구체적 민족주의사상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3·1운동에서 민족의 단결을 강조할 순 있어도 그것의 「이데올로기」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다만 선인들이 그때 그만한 얼을 성취시킨데 대해 감사와 존경심을 드릴 뿐이요 무조건 3·1운동이나 정신을 우상화하면 안 된다.
민족이 기념할 행사를 관이 주도해서도 절대로 안 된다. 일본의 눈치를 보고 축하식을 왜소하게 해도 안 된다.
문제는 3·1정신이나 그 운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에 대한 우리(후세인)와 자세에 있다. 그것들에의 복귀가 아니고 그것을 발판으로 하는 우리의 전진에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라도 그것을 절대 우상화하면 우리의 전진은 정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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