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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6)영화 60년(제67화)<56> 이규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0년 4월 19일에서 61년 5윌 16일 사이에 두드러진 것으로는 우리 영화사장 처음으로 민간 자율 가구인「영화윤리 전국위원회」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때까지의 영화 검열사부를 민간심의 기관에 넘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61년엔 5·16혁명이란 대변혁과 함께 영화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5·16혁명으로 서울 시내의 각 극장에 5·19간 영업 정지령이 내려졌으며, 문교부 고시 1백45호에 의거해 72개로 난립해 있던 영화사가 16개로 통합, 정비되었다.
이밖에 공연법이 새로 체점·공포되었으며, 사단법인 「한국영화인협회」의 발촉으로 「한국영화인연합회」가 해체되었다.
또 영화에 대한 특별행위세 부과를 반대하기 위해 영화인들이 가두「데모」를 감행했고 극장측도 이에 동조하여 이틀간 휴관했다.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컬러」「시네마스코프」인 홍성기 감독의 『춘향신』(1월18일 개봉)과 신상옥 감독의『성춘향』(1월28일 개봉)이 동시에 개봉, 경작 상영되었다.
결과는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74일간의 최장기 흥행기록을 수립하는 동시에 38만명으로 당시까지 최고 관객동원 기록을 수립했다.
이 두 영화의 경작으로 우리나라엔 한동안 사극영화의 제작「붐」이 일어났다.
또 상영중이던 전형목 감독의『오발전』이 당국의 재검열 지시로 상영이 중단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70mm 미국영화『남태평양』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봉내(삼등과장) 이만희(불효자)가 감독으로 각각 「데뷔」했고, 이병일 감독이「아시아」영화제작가연맹부총재로 피선됐다.
외국 영화제참가도 활발해져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서독에서 개최된 제11회 백림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받았다.
역시 강대진감독의 『박서방』이「마닐라」에서 개최된 제8회「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김승호)을 받았고, 최훈 감독의 『어느 여교사의 수기』가 신인 특별 연기상(박남규)을 받아 국산 영화의 질을 과시했다.
나는 61년에 『천하태평』이란 현대물을 감독했다.
이 영화는 성림 현상소를 운영하던 김창수가 신진영화사를 설립해 제작하게 됐다.
원작은 이단구였다.
갑부인 한 사나이가 6·25 사변으로 모든 재산을 잃지만 그는 천하태평, 결국 옛날 그의 신체를 가졌던 사람이 그의 재산을 되찾아 준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였다.
나는 배역을 이예춘은 조미령 허장강 박광수로 짰다.
이예춘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평소 그의 연기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예춘은 외모도 개성이 있었지만, 연기가 퍽 자연스럽고 호소력이 있어 기용했던 것이다.
그도 내 작품 출연이 첨음이었다,
촬영을 시작하니 영화에 쏟는 열의가 대단해 역시 주연을 잘 골랐구나 섕각했다.
그는 우선 나중에 녹음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넣으려고 촬영할 때부터 대사를 꼬박꼬박 외었다.
우리나라 배우들은 후시녹옴(애프터·리코딩)이라 촬영장에서 대사를 제대로 외려고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기 예사였다.
그러나 이예춘은 한자도 틀림없이 꼬박꼬박 대사를 외며 촬영에 임했다.
그는 왕 A급 배우라면 으례 있음직한 지각을 일체 하질 않았다.
촬영 「스케줄」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나타났다.
하도 신기해 내가 물었었다.
『감독님이 나와 계시는데 지각을 하다니요』하며 도리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또 이 영화의 주인공 성격에 맞는 옷을 직접 고물시장에 나가 골랐으며, 주인공「이미지」에 맞는 옷이 없자 마침 지나가는 지게꾼의 옷을 보고, 구해 입기도 했다.
나는 많은 배우들을 접해 왔지만, 그만큼 자기가 출연하는 영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배우를 보지 못했다.
『천하태평』은 이예춘의 녹음으로 완성, 명보극장에서 개봉했다.
흥행도 무난하여 제작자 김창수는 크게 만족했다.
그런데, 59년의 제작 편수가 1백11편이던 것이 60년옌「4·19」로 87편으로 줄어들었고, 61년엔 「4·19」의 후유증과 「5·16」의 새로운 변혁으로 79편으로 다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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