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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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본명「요시프·브로즈」, 일명「월터」,일명 「티토」 의 임종이 다가왔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모택동「네루」 「드골」이 모두 간 이제 『현대의 마지막 영웅의 시대』 에 드디어 종지부가 찍힐 찰나가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5개의 민족, 3개의 종교,3개의 공용어, 2개의 문자』 로 이뤄진 복잡한「유고」를 반세기가까이나 이끌어간「티토」는 분명위대했다.
『최종의 빵,양말,샤츠드 다떨어졌다. 지급원조를 바란다.』
1943년초 「유고· 빨치산」 최고사령관「티토」는 이렇게 「모스크바」에 타전했다.
끝내 「모스크바」로 부터는 원조가 오지 않았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나치」 와 싸운 「티토」를 「유고」국민이 우상화하는 까닭은 또 달리있다.
『동지 「티토」 대통령은 「스탈린」과 3번싸워 3번 다 이겼다』 는 것이다.
1937년「베오그라드」에 잠입한 애숭이 「티토」 는 「스탈린」 의 지시를 번번이 어겼다. 참다못한「스탈린」이 소영령을 내렸지만 이것마저 무친한「티토」는 제멋대로 당을 만들어 나갔다.
두번째는 41년에 시작된 반「나치·빨치산」전쟁에서도 반「나치」국민전선을 먼저 결성하자는 「스탈린」의 지령을 묵살해버렸다.
결경적인 싸움은 48년에 있었다. 이때 「티토」 는 「코민포름」 으로부터의 파문을 각오한채「스탈린」의 지도권에 정면 충돌했다.
『주권과 자주독립,내부문제에 외부간섭의 원칙,독자로 사회주의적 발전을 선택할 권리의 승인은 현재와 미래에 걸친 부동의 원칙이어야한다.』
2년전에 방소한 「티토」 는 「크렘린」에서의 만찬자리에서 이렇게 대답하게 연설했다.
그것은 그가 바로 한평생을 두고 지켜나간 노선이었다. 그것은 또 그만이 할수 있는 일이었다.
종신대통령·종신당의장을 겸한「티토」는 의회로부터 3번이나 「인민영웅」의 영?를 받았다.
그러나「티토」의 유명한 부기작가「필리스·오티」는 평하기를 『그의 인격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결코 권력에 도취되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 이다.
그는 권력을 「엔조이」 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썩어버리지는 앉았다.』
「티토」자신「오티」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을 통해 뭣이 좋았는가는 역사가 밝혀줄 일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따라 나를 기억해줄것이다.
역사는 또 좋지않았던 것도 알려준다. 나 자신은 인민과 국가를 위해 나의 인생을 바쳤다고 여기고있다.』
「티토」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많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영웅이 또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만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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