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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의 기간을 어떻게 보낼까|재수생의 가정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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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국에 몰아닥친 입시열풍이 12∼15일의 후기대학합격자 발표를 끝으로 이제는 합격생·낙방생의 또하나의 희비로 나뉘었다.
예시합격자수(약44만명)가 대학신입생정원(약20만명·전문대·교육대포함)의 2배가 넘는 상식밖의 경쟁속에서 관문을 뚫지 못한 수험생들은 이제부터 다시 「입시지옥」에 들어서지 않을 수 없게 된것이다.
「재수생」이란 원치않는 이름아래 1년후를 겨냥하게 된 이들이 이 재기의 기간을 어떤식으로 보내느냐에는 부모형제등 가족과 사회전체적인 배려가 큰 영향을 끼친다.
심리학자들은『무엇보다도 패배감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학벌과 일류만을 숭상하는 사회가치관 속에서 자칫 자신에게 쏠리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죄책감을 갖게되고 이것은 곧잘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패배주의적 소외감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남보다 못나서가 결코 아니라는것, 그리고 교육제도의 엄청난 모순등으로 숱한 학생들이 이렇게 되지 않을수 없었다는 점을 자녀에게 냉정히 인식시켜주라는게 이들의 충고다.
아들윤희종군이 재수를 거쳐 올해 연세대에 합격했다는 전왕근씨(50·서울종로구부암동)는 항상 『네가 능력이 없는 아이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실패한 데엔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었기때문』이라는 말로 아들을 위로, 고무했다고 한다.
『재수기간 동안의 그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는 전씨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본인에게 맡기고 대신 교우관계, 여가선용 쪽에 신경을 써주었다고.
재수생활끝에 올해 서울대경영대에합격한 황의준군의 어머니임분순씨(56·서울종로구신영동)역시 『학교처럼 지도해주는 곳이 따로 없어 항상 사귀는 친구, 출입하는 장소를 알리도록 했다』고 밝힌다.
재수생들의 일반적인 불만은「문제학생취급하는 사회의눈」이다.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극소수재수생과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대다수 재수생을 동일시하는데에 이들은 크게 반발한다.
연세대대학원생 박홍구씨의 조사에 따르면 재수생중 44.6%가 「사회에서 문제아 취급되고 멸시당하는 것같다」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것.
『가족과 친지들 보기가 약간 부끄럽긴 했지만 「내년에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이겨낼수 있었는데, 재수생의 조그만 단면을 전체의 모습인양 확대시키곤 하는「매스컴」의 횡포는 정말로 불쾌했다』고 재수경험이 있는 전영순양(고대의대)은 항변한다.
해마다 누적되는 재수생의 문제, 그 해결은 입시위주의 교육이 전인교육과 실업교육으로 바뀌고, 일류와 학별만을 따지는 사회의 그릇된 풍조가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제도가 낳은 희생자」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사회적 분위기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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