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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대에서 「우리」의 시대로 | 미국도 변하고 카터도 변하고 | 중동사태·석유파동 등으로 고개 드는 강대국 복귀 물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나」만을 중시하던 미국인들이 석유파동과 「이란」 인질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국가단위로 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 「쿠바」사태를 겪으면서 「미국 우선」만을 앞세우던 「고립주의」가 퇴색하고 「세계 속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관념이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이 미국에 남긴 가장 큰 비극은 아무도 과거 얘기를 하지 않으려는 현상이었다』(「워싱턴·스타」지 사설)는 개탄이 나오고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는 것이 신기루만은 아니라는 「무드」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예고편인 「아이오와」대회에서 4년 전에 투표장에 나타난 사람은 6만명에 불과했으나 금년도엔 22만명이나 쏟아져 나와 투표를 했다.
국가적 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카터」 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농촌 구석구석에 흩어져 살던 「저변의 미국인」들이 나라의 장래에 사상 유례없는 관심을 표명했다는 사실이 더욱 인상적이다.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코트」하겠다, 징병등록제를 실시하겠다는 「카터」의 제안이 쉽사리 지지를 얻고 있다.
그렇게도 요란했던 반전「무드」가 자취를 감추고 『소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총을 들고나서겠다』는 어느 「캠퍼스」 학생들의 외침이 TV화면을 통해 미국인 안방 구석구석을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미국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는 증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서 『이제 「나의 세대」가 끝나고 「우리의 세대」가 왔음을 예고한다』고 갈파했다.
「카터」도 미 국방력을 강화하겠다고 부르짖고 있다. 미 의회는 여느 때 같으면 행정부가 제출한 국방예산이 너무 많다면서 이를 삭감하려 드는게 오래된 관례였으나 올해엔 상황이 거꾸로 된 느낌이다.
국방성이 제안한 1천5백80억「달러」의 81년도 국방비는 1년 전보다 16%(실질증가 5.4%)나 증가한 평화시 최고액수의 국방비였으나 많은 의원들은 이 액수도 충분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이를 증액시키려는 분위기가 됐다.
미국의 조야가 「보수의 물결」을 타고 우경화로 돌아서는 기분이다. 고립주의가 밀려나고 동북「아시아」나 「페르시아」만 방어를 위한 집단안보체제 구상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각계에서 일고 있는 소비절약의 풍조도 위기에 대처하려는 미국인들의 마음가짐을 잘 드러냈다.
「카터」 대통령은 스스로 백악관 지붕 꼭대기에 태양열 집열기를 설치하고 백악관 안의 온수를 태양열로 해결하는 모범을 보였다.
「카터」는 또 백악관 안 각료회의실이나 그의 서재에 나무를 때는 난로를 설치했다. 대통령의 별장 「캠프·데이비드」는 이미 4개의 통나무 난로가 설치된바 있다.
시민들은 실내온도를 섭씨 16도 정도로 제한하자는 정부의 요청에 호응, 집안에서 「스웨터」를 껴입고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됐다. 대형차가 줄어들고 출퇴근시간엔 합승「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구두쇠 작전이 한참이다. 중역회의에 나오던 각종 음료수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회사 안의 「커피·타임」이 단축되고 손님을 상대하는 부서 직원들의 의자를 없애고 아예 서서 일하도록 만들었다.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빌딩」의 복도천장에 있는 형광등은 5개 건너 1개씩만 불이 켜지도록 조치했고 국민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안내서는 이미 한쪽 면을 쓰고 버린 종이의 뒷면에 인쇄한 것들이다.
「버지니아」주에서는 깡통으로 된 「코가·콜라」를 살 수가 없다. 깡통은 회수가 안되므로 병에 든 「코카·콜라」만 판매해서 이 병을 다시 회수, 사용하려는 의도에서다.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관청의 휴지·파지 등이 재빨리 재생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절약운동은 미국사회 구석구석에까지 번져 어린이간에 동화책 돌려보기 운동이 학교에서 장려되고 성인을 상대로 한 도서 대여업이 성업중이다.
각 기업들은 기술혁신과 기술개발 분야에도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사실 미국의 정밀 고도산업은 지난 60년대 말의 우주개발시대를 「피크」로 상당히 침체된 감이 없지 않다.
미국이 최근 중공에 팔기로 합의한 「랜드새트」 인공위성 기술 같은 것은 TV수상기 수 십만대를 판매한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내고있다.
「캘리포니아」주 「팔로알로」지역의 대전자회사들이나 「텍사스」에 산재해 있는 대석유회사들은 회사 안내용 책자를 통해 『우리 회사는 연간 수익의 20%이상을 기술개발비에 투자하고 있다』는 식의 선전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철강회사인 「US·스틸」은 작년에 16개의 공장 문을 닫고 1만3천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불황시대를 이겨내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가운데 「피츠버그」를 중심으로 한 미국 철강업계는 앞으로의 경기회복에 대비, 갖가지 정지작업이 한창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러한 추세에 있는 미국을 가리켜 『깨어나는 「아프리카」라고 불렀다.
미국이 지난 수년간 적어도 군사적인 측면에선 소련세에 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33%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고 믿고 있다(「갤럽」여론조사). 소련이 제 1로 강력하다고 본 미국인은 10%에 불과했다.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이 소련의 1조5천억「달러」보다 2.2배가 넘는 2조4천억「달러」에 달하고, 무역량은 소련의 3배가 넘는 3천2백70억「달러」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자부심인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은 세계 제일이라는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시련을 이겨내고 국가적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마치 「미국주식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을 「풀」가동하고 있는 느낌이다.【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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