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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4)-영화 60년 제67화(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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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1942년9월29일 자본금 2백만원으로 특수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와 그 자매업체인 조선영화배급사가 총독부에 의해 설립됐다. 조선영화주식회사 사장은 경성상공회의소 부소장이며 본정(충무로)에서 금은보석상을 경영하던「다나까·사부로」(전중삼낭) 가, 상무는 일본 일본영화사 제작부장이던「나까다·제이꼬」(중전청강)가 맡았다. 조선영화배급사 사장은「다나까·사부로」가 겸임했으며 상무는 총독부 영화검열주임「오까다·준이찌」(강전순)와 실업인「노자끼·신초」(야기진삼)가 함께 맡았다 (이때 우리나라 전국 영화관은 1백53개소였다).
총독부는 조선영화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곧이어 그때까지 남아있던 10개 민간영화사를 폐쇄하고 시설및 기재 일체를 매수함으로써 사실상 조선영화업계의 모든 재산을 몰수했다.
그리고 안종화 안석영 윤봉춘 전창근 홍개명 이규환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인(감독·배우·촬영·조명)들을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사원 또는 촉탁으로 흡수해 버렸다. 이렇게 해서 총독부는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장악하고 일원화함으로써 영화를 이른바 악전완수의 도구로 삼았다.
43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45년7월까지 제작된 일본어 사용의 이른바 어용영화는 모두 10편이었다. 그 10편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조선해협』=감독 박기채, 촬영 이명우, 출연 서월영 김신재 문예봉. 지원병 부부의 충성심을 그린 것.
② 『젊은 모습』=원제 『약き자』, 감독「도요다·시로」(풍전사랑), 촬영「미우라·미쓰오」(삼포광웅), 출연 복혜숙 이금용 서월영 남홍일. 조선청년들은 앞장 서서 전쟁터로 나가라는 내용. 이 영화는 조선영화주식회사와 일본의 송죽·동보영화사가 합작, 일본 전국 65개 극장에서 동시 상영됐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서울에 온「도요다」감독은 서울의 겨울풍경 효과를 낸다고 돈화문 앞에서 종로3가 단성사 앞까지 길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의 잎사귀를 말짱히 떼어버려 나목을 만들었다.
③ 『거경전』=감독 방한준, 촬영 김학성, 출연 전택이 남홍일 서월영 김신재. 포경선의 작업과정을 통해 수산물 증산을 독려한 것.
④ 『병정님』=감독 방한준, 촬영 이명우, 출연 이금용 전옥 김일해 김한. 일본군에 소집되어 전선으로 떠나는 조선청년들을 보고 부모들은 일본국민이 된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내용.
⑤ 『대양의 아이들』=감독 최인규, 촬영 한형모, 출연 문예봉 최운봉 김신재 이민자. 이민자는 당시 아역으로「데뷔」했음. 어느 섬마을 국민학교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내선일체의 경신교육을 시켜 그들을 군에 자원입대케 한다는 내용.
⑥ 『너와 나』=감독 허영, 촬영「모리오·데쓰로」(삼미철낭), 출연 문예봉「리꼬오랑」(이향란)「고스기·이사무」(소삼용) 김신재. 일본민족과 조선민족을 구별하지 말고 하나의 민족이 되어 잘 살아보자는 내선일체를 강조한 것.
⑦ 『사랑의 맹서』=감독 최인규, 촬영 한형모, 출연 문예봉 김신재 김유호「무라따·지에꼬」(촌전지영자). 조선인 국민학교에 부임한 일인교사가 조선학생들에게 일본의 생활풍습을 가르치며 일본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하도록 권장하는 내용.
⑧ 『신풍의 아이들』=감독 최인규, 촬영「야마사끼·가즈오」(산기일웅), 출연 김신재 독은기. 조선 청소년들을 일본공군병으로 끌어내기 위한 군사영화.
⑨ 『우리들의 전쟁』=감독 신경균, 촬영 양세웅, 출연 최운봉 독은기 김일해 조용자(무용가). 남편은 징용에 나가고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온갖 고생을 참고 견딘다는 전시총력전을 강조한 것.
⑩ 『감격의 일기』=감독 신경균, 촬영 양세웅, 출연 최운봉 김소영 복혜숙 조용자. 전쟁중 조선인으로 구성된 무용단이 일본으로 징옹간 조선인들을 찾아 위문하고 한편으론 그 가족들을 위로한다는 내용.
이렇게해서 모두 10편의 어용영화가 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영화주식회사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이10편을 끝으로 일본은 패망하고 말았다.
일제에 의한 우리 영화의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혼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광복과 함께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꽃 피웠다.<계속>이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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