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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르」 대통령 프로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란」 역사상 최초의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블·하산·바니-사드르」씨(46)는 온건한 경제전문가.
그는 60년대 초부터 망명중이던 「호메이니」를 도와 회교혁명을 지휘해 왔고 혁명정부 하에서는 외상과 재상을 역임했다.
1백명이 넘는 대통령 입후보자 가운데서도 그가 예상보다 훨씬 압도적인 지지표를 획득한 것은 그의 경제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았던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서방국가들은 그가 외상재임때 미국인 인질사건에 온건한 노선을 취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난국에 직면한 국민의 경제문제는 석유수출과 상품수입 등이 외교문제 해결에 의해 먼저 해결되지 않는한 정상화가 어렵기 때문.
1933년 서부 「이란」에서 출생, 50년대초 「팔레비」왕의 수상으로 있다가 축출된 「모하메드·모사데크」의 집권과 함께 정치활동을 시작했다가 「모사데크」의 실각과 정치운명을 같이했다.
15년전 「파리」 망명시절 「프랑스」의 실존철학자 「사르트르」에게 자신이 『「이란」의 초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은 특히 인상적이다.
엄격한 회교교육을 받아왔고 「팔레비」 치하의 비밀경찰 「사바크」에 두번 체포당했던 그는 「파리」 망명때에는 「이란」 국내외의 반「팔레비」 세력을 규합, 「이란」 인권위원회의 창설을 도왔고 「호메이니」가 「이라크」에서 「파리」로 돌아오자 그의 밑에서 대변인역을 담당했다.
경제문제에서는 회교의 전통을 내세워 다소 강경한 입장을 취해 은행과 일부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고 도시빈민의 지방분산·이자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한때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했던 외상 「고트브자데」와는 과거 같은 반「팔레비」운동을 하면서도 서로 얘기도 하지 않았을 정도였지만, 압도적인 득표차로 앞으로 그와의 권력투쟁에서는 일단 안정을 굳힐 것 같다.
그러나 수많은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는 극좌파와 소수민족들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도 문제다.
또 헌법상 대통령은 선거로 선출하되 회교의 최고지도자에 의해 임명 또는 파면될 수 있어 그의 정치역량은 크게 제약받을 수도 있다.
앞으로의 「이란」은 그가 강경노선인 「호메이니」와 혁명평의회 사이에서 어떻게 정책을 조정해 가느냐에 따라 대외관계에도 변화가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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